박근혜정부 비선 실세이자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지난 10일 대법원에 두 번째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대기업을 압박해 774억원의 재단 모금을 하게 하고 삼성그룹 등 기업들로부터 298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가 대부분 인정됐다. 그럼에도 최씨 측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강요죄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린 것을 근거로 직권남용 혐의까지 무죄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최씨 측 관계자는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상고이유서에는 강요성을 빼고 나면 재단 설립에 대통령이 직권을 남용했다는 부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앞세웠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최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등의 출연금을 기업에 요구한 행위가 강요죄가 성립될 정도의 협박은 아니라고 판단,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파기환송심에서 최씨의 형량은 징역 20년에서 18년으로 감형됐다.
최씨 측 주장은 결국 강요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출연금을 기업에 요구한 행위가 직권남용일 수 있느냐다. 최씨 측은 상고이유서에 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들에 문화 재단의 설립을 요청한 것이 역대 대통령들도 일상적으로 했던 행위이며, 사회공헌을 유도한 것을 직권남용으로 보는 건 억지라는 내용을 강조했다. 최씨 측은 “대통령은 국정 전반에 관해 발언을 하고 국민을 대표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며 “천재지변 등이 있을 때에도 ‘각자 추징해서 도우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했는데 무슨 죄가 되느냐”고 항변했다.
삼성으로부터 딸 정유라씨 승마 지원 명목으로 말 3마리 등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최씨 측은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최씨 측은 말 1마리를 추징금에서 제하면서도, 3마리 모두를 뇌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에 모순이 있다고 상고이유서에 적었다. 이와 관련해 박영수특검 측은 추징에서 빠진 말 1마리에 대해서도 여전히 최씨에게 추징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특검은 “뇌물공여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아닌, 업무상 횡령 피해자인 삼성전자에 말이 반환된 것”이라고 상고이유서에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씨 측이 ‘공여자 측에 이미 돌려줬다’고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다른 판단을 내놓을 확률은 낮다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최씨의 마지막 항변을 검토한 특검 측은 “굳이 답변을 할 내용이 아니다”는 반응을 내놨다. 이미 최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의 판시대로 판단이 이뤄졌고, 이에 따라 확정력이 발생해 상고의 이유로 삼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특검은 “대법원에서 피고인의 상고 이유에 대해 ‘이유 없다’고 배척을 하면 확정력이 발생한 것”이라며 “형을 다시 정하기 위해 파기환송심을 하는 것일 뿐 다른 판단의 여지는 없다”고 했다.
각각 다섯 번째 재판을 맞게 되는 최씨와 박영수특검이 지난 10일 각각 제출한 상고이유서는 현저하게 분량의 차이가 났다. 최씨는 200쪽에 달했고, 특검은 20쪽 이내였다. 최씨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부터가 무죄라며 뇌물수수에 관해서도 “명시적 의사 표시를 한 증거가 일체 없으며 종전 판결이 잘못됐다”고 전부 불복하면서 분량이 길어졌다. 반면 특검은 “강요죄 부분에 대해선 상고이유로 논할 가치가 없고, 말 1마리에 포함되는 추징에 대해서만 불복해 적었다”고 밝혔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