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벌써 리원량 교훈 잊었나…女의사 폭로 삭제에 ‘집단 저항’

입력 2020-03-12 17:18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은폐 과정을 폭로한 아이펀.연합뉴스

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렸던 의사 리원량의 동료가 최근 중국 정부의 초기 은폐 과정을 폭로했으나 이 기사 역시 검열로 삭제되자 중국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를 최초로 폭로하고 자신도 감염돼 숨진 34세의 리원량에게 ‘방역 모범 인물’이란 칭호를 추서해놓고도 또다시 ‘은폐’와 ‘통제’ 습성을 버리지 못한 채 여론을 억누르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네티즌들은 해당 기사를 암호문처럼 만들어 퍼나르면서 정부에 집단으로 저항하고 있다.

후베이성 우한의 우한중심병원 응급과 주임 아이펀(艾芬)은 최근 잡지 ‘인물’ 3월호 인터뷰에서 자신의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놓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 초기에 정부가 어떻게 은폐를 했는지 실상을 폭로했다.

하지만 그의 글은 ‘인물’의 위챗 계정에 올라왔다가 삭제됐고, 이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인터뷰 기사를 여러 곳으로 퍼나르며 당국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와 부호를 동원해 전파하고 있다. 영어판과 중국어 병음 버전, 이모티콘과 한자를 섞어 쓴 버전, 컴퓨터 코드 버전이 나왔고, 갑골문으로 쓴 판본도 있었다.
이모티콘과 한자를 섞어 아이펀의 폭로 내용을 전하는 암호문.

갑골문 버전

이들 암호문에는 지난해 12월 20일 아이펀이 폐렴 환자의 바이러스검사 보고서를 하나 입수한 뒤 ‘사스 코로나바이러스’ 등의 문구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서 동료 의사들 채팅방에 올렸고, 이를 전파한 의사 8명이 경찰에서 훈계를 받았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아이펀은 병원 기율위원회에 불려가 호된 질책을 받았으며, 그녀가 또 다른 휘슬블로어(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로 불리지만 그녀 자신은 ‘호루라기를 건네준 사람’이라고 칭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아이펀은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출현을 알렸으나 오히려 유언비어 유포자로 경찰에 불려가 훈계를 받은 의사 리원량과 같은 병원 소속이다.

아이펀은 지난해 12월 30일 사스로 의심되는 환자에 대한 보고를 받아 응급과 의사 채팅방에 올렸고, 이 보고서가 곳곳에 퍼지면서 리원량이 있던 채팅방에도 전파됐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코로나19 발병을 경고한 의사 리원량.

아이펀은 또 병원 감염내과 등에도 이를 즉시 알렸고 “지나가는 호흡기내과 주임을 붙잡고 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는 패닉을 막기 위해 의료진의 코로나19 정보 공개를 금지하는 지시를 내렸다는 말을 상관에게 들었다”며 “병원 측도 모든 직원에게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정보 공개를 금지한다고 재차 공지했다”고 전했다.

아이 주임은 1월 2일에는 병원의 당 서기에게 불려가 “응급과 주임인데 어떻게 원칙도 조직 기율도 따르지 않고 헛소문을 퍼뜨렸느냐”는 질책을 받았다.

그리고 응급과의 200여명에게 찾아가 코로나바이러스 함구령을 전달하라는 지시도 받았다.

그는 “기율위 측은 내가 우한의 발전을 망쳤다는 듯이 비판해 절망적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는 사이 환자가 폭증하기 시작했고,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전염병 창궐로 이어져 중국 내에서만 3000명 이상이 숨지는 비극을 맞이해야 했다.
아이펀 얼굴과 암호문을 섞은 그림. 웨이보캡처

아이펀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질책을 받든 말든 여기저기 다 알리고 다닐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코로나19 발병 후 ‘우한 일기’를 쓰고 있는 작가 팡팡은 “기사가 삭제되면 각종 방식으로 다시 올리는 것은 기사를 보호하는 게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환구시보 편집장인 후시진도 위챗 계정에 올린 글에서 아이펀의 인터뷰 기사 퍼나르기를 하는 현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일종의 온라인 행위 예술”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사회에 필연적인 불만을 방출할 출구와 공간은 남겨둬야 한다”며 과도한 여론 통제를 비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