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메르스 유행 때도 손실은 있었지만 ‘항공기가 서 있다’고 하진 않았거든요. 지금은 비행기가 갈 데가 없어서 그냥 땅에 서 있잖아요. 항공업계 사상 초유의 사태입니다.” 한국항공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국내 항공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달 이용자 수가 반토막 나자, 5~10% 감소에 그쳤던 신종플루, 메르스 때와는 다른 차원의 위기라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여객 수가 곧 회복했던 과거 두 감염병와 달리 코로나19의 타격은 장기전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의 지난달 국제선 이용자 수는 228만521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87% 급감했다. 이달도 일본행 하늘길이 닫히는 등 여객 수 타격은 심화될 전망이다.
반면 2009년 신종플루나 2015년 메르스 유행 때는 최대 이용자 수 감소율이 각각 12%, 5% 대에 그쳤었다. 신종플루의 경우 2009년 4월 국내 첫 감염 발생 이후 2008년 금융위기 여파에 겹쳐 여객 감소율의 커지긴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같은 해 6월 12.95%의 여객 수 감소율을 보인 뒤 곧 회복했다. 메르스 때는 타격이 더 적었다. 국내 첫 감염이 발생한 2015년 5월 이후 6월(-5.59%) 7월(-3.81%)에만 떨어진 후 바로 두 자리 수의 증가율을 보였다.
코로나19의 타격이 과거 경험했던 감염병들보다 치명적인 이유로 ‘해외의 한국인 입국 금지 조치’가 우선 꼽힌다.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2009년 10~11월엔 ‘상대적 안전지인 따뜻한 휴양지로 가자’는 붐이 불어 호주나 동남아행 비행기 표가 동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호주를 포함해 해외 123개국이 한국인에 대해 입국 금지 등 검역 강화 조치를 하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아프리카로 신혼여행을 간 한국인 부부가 현지 병원에 격리됐다는 뉴스를 보고 여행을 취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신종플루, 메르스 때는 한국인을 입국 금지한 국가가 없었지만, 지금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돼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항공협회 관계자는 “과거 감염병 땐 우리도 피해국가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확진자 수가 유독 높아 교류 타격이 더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저비용항공사(LCC)가 늘어 수익 여건이 예전보다 좋지 않다는 점과 지난해 ‘노 재팬(no Japan)’ 운동의 여파 컸다는 점도 부정적인 요소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신종플루, 메르스 땐 한참 국민들이 여행을 즐기던 중에 움츠리는 데 그쳤지만, 이번엔 일본 여행심리가 줄어 LCC가 한 차례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감염병이 와 타격이 더 큰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항공업계 타격이 최소 상반기까진 이어질 것으로 봤다. 허 교수는 “국내가 진정세를 보여도 해외의 타격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상반기엔 회복이 어렵고 빨라도 9월, 최악의 경우 연말까지는 여파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여름이 항공업계의 보릿고개가 될 것”이라며 “그때까지라도 정부의 긴급 금융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의 항공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17개국의 290개 주요 항공사가 모여있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최근 코로나19가 지금 속도로 계속 확산할 경우 항공업계가 1130억달러(약 134조원)의 매출 손실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피해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