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3월 예정된 해외 아티스트(단체)들의 내한공연은 사실상 ‘전멸’했다. 예외가 딱 하나 있다. 국내에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다. 그는 국내 팬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시국을 뚫고 한국을 찾아 22일 리사이틀 무대를 선보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는 리시차가 가지는 2년 만의 내한 공연이다. 최근 코로나19가 급격히 퍼지면서 한국에서 공연한 아티스트들은 타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거나 격리 대상이 되고 있다. 향후 공연에 타격이 커 지난달 6일 보스턴 심포니의 첫 내한 공연이 무산된 것을 시작으로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14~15일), 루체른 스트링 페스티벌(17일), 엘리소 비르살라제 피아노 리사이틀(19일) 등이 줄줄이 취소됐다.
리시차는 그럼에도 한국 관객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공연 강행 의지를 밝혔다고 공연기획사 오푸스가 전했다. 리시차는 오는 28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공연도 앞두고 있다. 오푸스 관계자는 “리시차가 2주간의 격리조치를 당하거나, 미국 내 공연이 불투명해지더라도 서울 공연만큼은 꼭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한국의 투명한 방역 시스템을 신뢰하기도 하고, 한국 관객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콘서트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한 귀국 과정도 감수한 내한이다. 모스크바에 사는 리시차는 본래 리사이틀을 마치고 다음 날 오전 모스크바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23일부터 27일까지 모든 직항 항공편이 결항 돼, 다른 나라를 거쳐 27일 모스크바로 들어간 후 바로 미국으로 출발할 계획이다.
화려한 속주와 박력 있는 타건으로 유명한 리시차는 국내외에서 ‘피아노 검투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2013년 첫 내한공연을 가진 이후 꾸준히 한국 팬들과 교감하고 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리시차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를 아우르는 피아노 소나타 대표곡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극적인 멜로디라인이 돋보이는 ‘폭풍’과 까다롭기로 유명한 ‘열정’ 등 곡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됐다. 특히 주목할 곡은 공연 대미를 장식할 ‘함머클라비어’다. 리시차는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하나의 교향곡”이라고 표현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