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재판장이 말 바꾼 적 없다”… 이재용 측, 특검 주장 정면 반박

입력 2020-03-12 15:45 수정 2020-03-12 15:59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재판장이 준법감시제도에 대해 양형사유가 아니라고 한 적도 없다”며 박영수 특검팀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앞서 특검 측이 ‘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대해 “준법감시제도는 양형과 무관하단 취지로 말해놓고 입장을 바꿨다”고 반발한 것을 두고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아울러 이 부회장 측은 미국 연방지방법원의 기업 관련 판례, 현대차 계열사 부당지원 사건, 벤츠코리아 배출가스 인증 위반 사건 등을 근거로 준법감시제도를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한 실제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재판부가 준법감시제도를 이 부회장의 양형 사유로 적용할 수 있는 참고자료로 제시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 8장’에 대해서는 “개인이 아닌 기업에게만 적용되는 기준이 맞지만 참조할 수는 있다”고 했다.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미 연방 양형기준 8장은 개인이 아닌 기업에 적용되는 기준이라 이 부회장의 사건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1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지난달 27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재판장인 정 부장판사가 준법감시제도의 양형 사유 적용에 있어 말을 바꾼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부회장 측은 대법원 판단으로 횡령액수가 50억원이 넘어 징역형을 피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준법감시제도 운영을 ‘진지한 반성’ 등 양형 사유로 참작해 집행유예 이하로 감형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정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첫 공판에서 “준법감시제도는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 무관하다”고 했다가 지난 1월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검 측은 ‘말 바꾸기’라며 반발해왔다. 그러자 이 부회장 측이 “재판장이 준법감시제도를 양형사유로 삼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이 부회장 측은 준법감시제도 운영을 양형 사유로 반영할 수 있다는 의견을 뒷받침할 국내외 판례도 제시했다. 미국 콜롬비아·미네소타주 연방지방법원 판례 중 기업의 수질관리법 위반 사건, 현대차의 계열사 부당지원 관련 배임 사건, 벤츠코리아의 배출가스 인증 위반 사건 등에서 준법감시제도가 양형에 참작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이 미 연방 양형기준 8장에 대해 “개인이 아닌 기업 범죄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반박한 것에 대해선 “기업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맞지만, 재판부도 기계적으로 적용하라는 게 아니라 참조하라는 것”이라며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였다.

특검 관계자는 “이 부회장 사건은 기업범죄가 아니라 개인범죄”라며 “준법감시제도는 이 사건에서 양형 사유로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는 오히려 이 부회장이 저지른 업무상 횡령죄의 피해자이자 말 세 마리 등 뇌물의 발생 원인이나 처분을 가장하는 데 이용당한 도구”라고 반박했다.

특검 측은 곧바로 반박 의견서를 내진 않을 방침이다. 지난달 24일 정 부장판사에 대한 기피 신청을 내고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검 측은 전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라”고 권고한 것에 대해선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진지한 반성을 하려면 경영권 승계 작업의 실체가 정확히 드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