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포츠계 코로나19 ‘선수 확진자’ 초비상…곳곳서 리그중단·연기

입력 2020-03-12 14:59 수정 2020-03-12 17:12
11일(현지시간) 확진판정을 받은 것으로 발표된 유벤투스 수비수 다니엘 루가니. AFP/연합뉴스

미국 국가가 1만8000석 규모 관중이 가득찬 농구장에 울려퍼졌다. 당일 경기장에 나타난 선수의 이름이 하나씩 낭독된 뒤 시합은 시작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었다. 문득 농구와 어울리지 않는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코트 위로 올라와 심판, 양팀 감독들을 모아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어 양팀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들어가면서 관중들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경기장에 남았다. 뒤이어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경기장을 떠나주십시오.” 전염병으로 인한 미 프로농구(NBA) 리그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순간이었다. 미국 CNN방송은 11일(현지시간) 경기 시작 직전 리그 중단 사태를 맞은 미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 체서피크에너지 아레나의 풍경을 전했다.

세계 스포츠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둘러싼 파장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시즌 막바지에 접어든 미 NBA와 유럽 축구무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대회 중단과 연기가 잇따르고 있다.

NBA 사무국은 이날 성명에서 “유타 재즈 선수가 사전 검사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면서 “추가 공지가 있을 때까지 리그 일정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유타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경기는 경기 시작 35분 전 취소됐다. AP통신 등은 확진자가 유타의 프랑스 출신 센터 뤼디 고베르(27)라고 전했다.

유타와 오클라호마시티 경기는 경기장에 선수들과 관중들이 입장한 상태에서 취소 공지가 내려졌다. 양 팀 선수들은 격리됐다. 유타는 최근 열흘 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뉴욕 닉스, 보스턴 셀틱스, 디트로이트 피스턴스, 토론토 랩터스와 경기한 바 있어 추가조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NBA 스타들은 리그 중단에 우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르브론 제임스는 트위터에 “스포츠 경기, 학교, 직장 등 모든 게 취소되고 있다. 2020년을 취소해야 될 판”이라면서 “너무 힘든 3개월이었다. 신의 축복과 안전을 빈다”고 썼다.

코로나19 확진자는 같은 날 유럽 축구무대에서도 나왔다. 이탈리아 세리에A 구단 유벤투스는 이날 성명을 내고 “다니엘레 루가니(25)가 코로나19 검체 검사 결과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른바 ‘빅리그’로 불리는 유럽 주요 1부리그에서는 처음 있는 사례다. 이탈리아 프로리그에서는 지난달 29일 3부리그 피아네세에서 선수 3명과 구단 관계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유벤투스는 “루가니는 현재 증상이 없는 상태”라며 “구단은 현재 루가니와 접촉한 이들을 향한 조치를 포함해 법이 요구하는 모든 격리절차를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루가니 본인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내 상태는 괜찮다”고 글을 올렸다. 루가니는 근 2주 사이 프랑스의 올림피크 리옹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 세리에A 인터밀란과의 리그 경기에서 뛰었다.

같은 날 독일에서도 프로축구 선수 중 최초로 확진자가 나왔다. 독일 2부리그 소속 구단 하노버96은 이날 성명에서 수비수 티모 휘베르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구단 측은 휘베르가 동료 선수들과 접촉을 피해왔다며 추가 감염자가 있을 염려는 없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의 영향은 유럽 리그 전체로 번지고 있다. UEFA 측은 이날 스페인에서 열릴 예정이던 유로파리그 세비야와 AS로마 경기, 이탈리아에서 열릴 예정이던 인터밀란과 헤타페의 경기를 연기시켰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로축구선수 노조는 UEFA 측에 양국 간 경기를 연기·취소하라고 요구 중이다.

스페인 라리가는 다음달 15일까지 무관중으로 진행하는 게 확정됐다. 다음달 18일 열릴 예정이던 스페인 국왕컵 코파델레이 결승전도 연기된 상태다. 이탈리아 정부가 다음달 3일까지 리그를 중단시킨 세리에A는 현재로서는 재개 가능성도 확신할 수 없다. 프랑스에서는 다음달 4일 예정되어 있던 리그컵 결승전이 연기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 선수단도 지난달 28일 그리스 올림피아코스와의 유로파리그 원정경기에서 뒤늦게 확진 판정을 받은 상대팀 구단주와 접촉한 일이 드러나 자가격리 중이다. 이 때문에 아스널의 다음 일정이었던 12일 EPL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경기도 연기됐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