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때 ‘문화재’가 프랑스서 100파운드에 팔렸던 이유

입력 2020-03-12 13:24
기사진표리진찬의궤 영인본. 국립국악원 제공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아시는지. 조선 후기 1809년에 임금 순조가 그의 조모인 혜경궁 홍씨(1735~1815)의 관례(성인의식) 6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왕실에서 옷감과 음식을 올린 행사를 기록한 의궤를 말한다. 1809년 1월 22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열린 진표리(옷의 겉감과 안감을 올리는 일)와 2월 27일에 연 진찬(국가 경사를 맞아 거행되는 궁중 잔치)의 모습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진찬의궤 중 가장 오래됐으며, 진표리와 진찬을 함께 담은 유일한 의궤다. 2018년 의궤에 해제를 덧댄 영인본을 출간한 국립국악원 측은 “천연색으로 입체감 있게 묘사된 도식이 여러 의궤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특히 궁중 악대 연주 모습과 악기를 세밀하게 그려 궁중음악 복원과 재현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원본은 현재 한국이 아닌 영국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규장각에서 어람용(임금이 보는 용도)으로 제작된 기사진표리진찬의궤는 본래 혜경궁과 순조에게 각각 진상됐다. 이후 보관을 위해 19세기 중반 외규장각으로 옮겨졌는데, 1866년 병인양요 때 한 권은 불타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한 권이 프랑스를 거쳐 현재 영국 국립도서관에 소장됐다.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이 영국 국립도서관에 있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보고 있는 모습. 본인 제공



그렇다면 프랑스가 가져간 우리 문화재가 어떻게 영국까지 건너간 것일까. 영국 국립도서관과 협의하고 영인본을 출간하는 과정을 총괄한 김희선(51)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의궤가 발견된 곳은 박물관이 아닌 파리에 있는 한 오래된 서점이었다. 당시 서점을 돌아다니던 영국 국립도서관 측이 의궤를 발견하고 100파운드에 매입해 지금 국립도서관이 보관하게 됐다.

지금으로 치면 약 15만원 정도 가격이지만,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더 높은 가치가 매겨질 것으로는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다는 점만은 같다. 김 실장은 12일 “100파운드에 팔렸던 그 책이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의 소중한 자료였던 것”이라며 “실물로 보니 색깔이 매우 또렷하고 아름다웠다. 영국에서는 당시 의궤를 PDF 파일로 변환해 장당 금액을 매겨 전체 몇백만 원 정도 규모로 온라인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의궤의 영인본이 출간되면서 국내 학자들은 연구에 상당한 탄력을 받았다. 그간 국내 연구진들은 의궤의 실물을 접하기 어려워 연구에 제약이 많이 따랐었다. 김 실장은 “국내 연구자들은 전체 맥락을 연구하고 싶어도 (영국에) 직접 가지 않으면 파일을 구하기 어려웠다“며 “정 여의치 않으면 흑백 복사본의 사본을 갖고 알음알음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우리 문화재임을 끈기 있게 주장한 덕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영국 국립도서관 측도 마음을 돌렸다. 협의 성사와 그 이후 고화질 이미지 파일 전체를 제공받아 해제를 붙인 영인본을 내는 데까지 약 3년이 걸렸다. 2018년 나온 ‘한국음악학술총서 11집: 역주 기사진표리진찬의궤’가 그것이다. 김 실장은 “유럽이나 해외 박물관 수장고에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한국 관련된 고문헌 등 공연예술 유물들이 꽤 있다”며 “그런 자료들을 발굴하고 공개하는 작업을 계속 할 것”이라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