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 입성을 보장받은 류호정(27)씨가 ‘대리 게임’ 논란에 휩싸였다. 대리 게임이란 타인에게 자신의 온라인게임 계정을 맡겨 등급을 올리는 행위를 말한다. 국회와 e스포츠 업계 관계자 등은 류씨의 행동에 대해 입을 모아 “심각한 불공정 행위”라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최근 게임단들은 대리 게임을 승부조작과 동일선상에 놓고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대리게임처벌법’을 대표 발의한 이동섭 의원은 11일 성명을 내고 “LoL 게임을 상당 기간 즐겼고 대회까지 출전했던 사람이 대리게임의 심각성을 몰랐을 리 없다. 게임업계에 몸을 담았고, 앞으로 게임업계 노동자 권익에 앞장서겠다는 사람이 대리게임을 ‘조심성 없이 일어난 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으로 활동 중인 황희두씨는 10일 본인 SNS를 통해 “쉽게 비유하자면 ‘대리 시험’을 걸렸다고 보시면 된다”고 비유했다.
업계에서는 대리 게임 행위가 승부조작과 동등한 심각한 불공정 행위라고 평가했다. 근래에는 오히려 승부조작보다 더 민감한 문제라는 증언도 나왔다. LoL을 서비스 중인 라이엇 게임즈는 이용약관 7조 ‘행동강령’에서 ‘타인의 계정으로 플레이하거나 그러한 목적의 활동에 가담하는 행위’에 대해 계정 영구 정지 혹은 계정 삭제 등의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게임단 관계자 A씨는 “대리 게임은 이미 법과 게임사 규정 등을 통해 결론이 난 불법행위”라면서 “근래 게임단들은 승부조작보다 대리 게임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 문제 때문에 프로 생활을 시작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게임단은 선수 영입 시 ‘대리 게임 금지’ 서약서를 받고 있다. 어떤 게임단은 매년 선수와 코치, 감독의 게임 계정을 전수 조사해 대리 게임 관련 처벌 이력이 있는지 체크한다. 이와 관련된 소양교육도 게임사와 협회 등을 통해 수시로 진행될 정도다.
‘도파’라는 닉네임을 쓰는 정모씨는 과거 대리 게임 문제로 선수 자격이 박탈당하고 본인 명의의 계정까지 영구 정지 당했다. 현재 그는 인터넷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다. 프로게임단 kt 롤스터의 경우 2017년 5월 대리 게임 및 ‘일베’ 논란을 빚은 선수를 방출했다. 한 게임단은 지난해 말 입단을 추진 중이던 연습생이 대리 프로그램을 사용한 이력이 뒤늦게 발견돼 계약서 작성을 취소하기도 했다.
게임단 관계자 B씨는 “스포츠가 공정한 경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듯 근래 개개인의 플레이 경험 또한 공정한 스포츠맨십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소한 대리 행위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전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게임 내 등급은 학우들과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 게임을 통해 정정당당한 경쟁을 배우는 것이다. 대리 게임은 그러한 공정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내에서 e스포츠 대회를 열고 있는 게임사 관계자 C씨는 “당사자에겐 단순히 지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행동이었겠지만 넓게 바라보면 게임의 공정성을 무너뜨리고 게임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을 훼손시키는 행위다. 의도와 무관하게 게임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라면 대리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와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류씨는 2014년경 남자친구 강모씨에게 온라인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계정을 맡겨 등급을 올렸다. 대리 게임은 게임 업계에선 심각한 불공정 행위로 간주된다. 지난 2018년 12월에는 ‘대리게임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리 게임을 업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할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의 대상이 된다.
논란이 커지자 류씨는 10일 입장문을 내고 대리 게임 행위를 사과했다. 그는 “조심성 없이 주변 지인들에게 제 계정을 공유했다”면서 “문제가 되어 사과문을 올리고 동아리 회장직에서 물러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 유저의 능력을 불신하는 게임계의 편견을 키운 일이니,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셈이다. 저의 부주의함과 경솔함을 철저히 반성한다. 조금이라도 실망하셨을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류씨의 사과문에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인터뷰에서 대리 게임을 통해 등급을 올린 행위를 마치 본인이 직접 달성한 성과인 것마냥 언급했던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비난 목소리를 더욱 커졌다. 대리 게임 논란이 일었던 2014년 5월 류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플래티넘1(게임 상 상위 등급)’ 등급에서 승급전 중이다. 서포터와 정글(게임 내 역할)을 주로 간다”면서 해당 등급이 본인 실력인 것처럼 말했다. 또한 해당 인터뷰보다 두 달여 앞선 인터뷰에서 류씨는 “(여성 게이머의 대리 의혹은) 사회적 편견이 있다. 여성이 조금만 못하더라도 대리나 버스를 탔다고 너무 쉽게 단정 짓는다”면서 날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7일 정의당은 4·15총선 비례대표 1번으로 20대 청년 류씨를 내정했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비례연합당에 참여하지 않을 시 5~9석의 비례대표를 배출할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상 류씨의 국회 입성은 보장된 셈이다. 1992년생인 류씨는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새 역사를 쓸 가능성이 높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