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진부터 보자. 오른쪽에는 미국 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가 미소를 짓고 있고, 왼쪽에는 정체불명의 노인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 있다. 노인의 행색은 초라해 보인다. 수염은 덥수룩하고 머리는 봉두난발이다. 사진이 찍힌 날짜는 2011년 3월 2일. 오바마는 이날 자국 문화발전에 공헌한 이들을 불러 국가예술훈장을 수훈했다. 미국 정부가 예술가에게 주는 최고 권위의 훈장이었다. 사진 속 노인은 미국 의회도서관으로부터 ‘계관시인’이라는 칭호를 얻은 도널드 홀(1928~2018). 오바마는 당시 홀에게 훈장을 건네며 어깨를 감싸더니 왼쪽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고 한다. 그러나 홀은 저때 이미 왼쪽 귀가 먹은 상태였기에 대통령의 덕담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에세이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에서 이때를 비롯해 그동안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겪은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그렇다면 훈장을 받은 뒤 홀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죽는 것보다…’은 미국의 국민 시인이 내놓은 일급의 에세이다. 홀은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꾸준히 글을 썼다고 한다. 원제는 ‘여든 이후의 에세이’라는 뜻의 ‘ESSAYS AFTER EIGHTY’. 책에는 인생에 어스름이 깔리던 80대에 홀이 써내려간 산문 14편이 실려 있다. 늙음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홀의 솜씨는 그야말로 능수능란하다.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에서 그윽한 기품과, 희미한 유머와, 담백한 입담을 두루 확인할 수 있다.
인상적인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시인은 “나는 평생 노인을 사랑하며 살았고 이제 자연법칙에 따라 노인이 되었다. 세월은 10년씩 흘러갔다”며 이렇게 말한다. “서른 살은 겁나는 나이였고 마흔 살이 되던 날은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눈치 채지도 못한 채 지나갔다. 50대가 최고였는데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60대가 되자 50대의 행복이 연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암에 걸렸고 아내가 죽었다. 그 후의 여러 해를 돌아보면 마치 다른 우주로 여행을 온 것 같다.”
홀은 어릴 때부터 죽음에 집착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쓴 시도 죽음을 다룬 작품이었다. 한데 나이가 들면서 죽음을 향한 흥미는 시들해졌다. 그는 죽음에 얼마간 초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난 야망이 있었고 이제 그 야망의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다. … 내 인생의 목표는 화장실까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와 상반되는 글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죽음을 슬퍼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애통해 해줄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내가 남기고 갈 감각이 없는 물건들을 생각하면 울적해진다”고 고백한다.
책의 또 다른 뼈대라고 여김직한 부분은 문학을 향한 뜨거운 애정이다. 특히 항상 정련되고 엄정한 글을 내놓고자 했던 작가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홀은 “글쓰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고쳐쓰기에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죽는 것보다…’에 실린 원고 중 일부는 80회 이상 퇴고한 것들이라고 한다. 밑줄을 긋게 만드는 대목이 수두룩한데 이런 부분이 대표적이다. “에세이는 천국과도 손을 잡고 지옥하고도 악수를 한다. 이 점에서는 시나 이야기나 소설과 다르지 않다. 삶을 이루는 세포의 구조가 모순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어떨 때는 북쪽이 지배하고, 어떨 때는 남쪽이 장악한다(에세이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순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글은 망한 것이다).”
아마도 한국 독자에게 홀은 낯선 시인일 것이다. 그런 만큼 끄트머리에 실린 ‘도널드 홀의 생애’를 먼저 읽은 뒤 본문을 보는 게 좋은 독법일 수도 있겠다. 인터넷에서 과거 홀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글에 눈길이 갔다. 홀은 나이가 들면서 휠체어 신세를 졌는데, 2012년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그는 글쓰기가 천직이었음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방문턱을 넘을 때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지만, 앉아서 글을 쓸 때 나는 오래된 천국에 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