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79)를 향해 독일 음악계가 뒤늦게 칼을 빼들었다.
10일 오페라 전문 매체 ‘오페라 와이어’ 등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 도이치오퍼는 2020~21년 시즌 공연 계획을 발표하면서 “도밍고가 오는 6월 ‘돈 카를로’에 출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도밍고는 당초 ‘돈 카를로’에 3회 출연할 예정이었다.
베를린 도이치오퍼는 지난달 24일 도밍고가 최소 27명의 여성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미국오페라노조(AGMA) 발표에 이어 도밍고가 다음날 공식사과를 한 후 계약 해지를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베를린 도이치오퍼는 지난 1월엔 ‘라 트라비아타’에 예정대로 도밍고를 출연시켰다가 독일 여성계와 언론계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도밍고에게 등을 돌린 건 베를린 도이치오퍼뿐만이 아니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이날 “도밍고가 오는 22·26일과 4월 2일 예정됐던 ‘시몬 보카네그라’에 출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고령인 도밍고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염을 염려해 출연을 취소했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성추행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후속 조치를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독일 오페라계는 AGMA의 조사결과 발표 뒤에도 도밍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도밍고의 조국인 스페인 문화부와 오페라계가 도밍고를 퇴출시키자 일부 극장을 중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밍고 캐스팅을 강행할 경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이날 두 메이저극장의 취소 발표로 이어지게 됐다.
한편 도밍고의 성추행 의혹을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가 또 나왔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오페라는 10일 도밍고가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성들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믿을만한 10건의 고발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LA오페라는 그가 21년간 예술감독으로 재직한 곳이다.
LA오페라는 지난 반년간 진행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피해 여성들은 (도밍고의 행동으로) 불편함을 느꼈다는 반응부터 심각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증언을 했다”고 전했다. 이번 LA오페라의 조사결과는 그동안 ‘친(親) 도밍고’ 입장을 견지해온 유럽 오페라하우스와 페스티벌이 도밍고 퇴출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