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3)

입력 2020-03-11 10:10
여자는 오랜 시간 씻었다. 간간히 콧노래도 들렸다. 여자가 목욕 가운을 걸치고 머릿수건을 쓰고 나왔다. 그리고 화장대 앞에 앉아 드라이기로 머리카락 물기를 말렸다. 드라이기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1970년대 초 서울 청계천 빈민가 송정동 모습. YMCA호텔을 찾아온 여인은 내게 이곳에서 왔다고 말했다. ⓒ 노무라 모토유키

가볍게 화장까지 마친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여자는 손님 방 안으로 들어왔으니 행운의 밤을 맞은 것이다. 소위 화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화대는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치 월급에 맘먹었다. 예수가 그러했듯이 우리 중에 이 여자를 먼저 돌로 칠 자가 누가 있겠는가. 여자가 측은했다.

서울의 밤은 길었다. 동대문으로 향하는 서울 제1의 번화가 종로 2가였다. 호텔 건너편 한국 최대 서점 종로서적은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무언가 보채는 듯한 여인에게 물 한 잔을 주었다. 여인은 물을 건네는 내 손을 잡았다. 싸구려 향수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빨리 자기 일을 끝내고 자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그녀에게 성경을 내밀며 하나님을 아느냐고 물었다. 여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웃었다. 너무 조용한 밤이었다. 지쳐 보이는 여인에게 침대에서 잘 것을 권했다. 그랬더니 부끄러워하다가 이내 침대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그러나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왜냐면 여자의 신분을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글·사진=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