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묵상노트 (7)

입력 2020-03-10 19:29

이영은 목사
서울 마라나타 교회

목마른 여자 (요 4:3~42)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시는 중에 사마리아를 통해서 지나가십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한낮 12시경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거기서 만나셨습니다.

여인은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그 여인은 뭔가 사연이 있어 보입니다.

인생의 낙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 입니다.

게다가 아무도 물을 길러 나오지 않는 시간에 저런 모습으로 나온걸 보니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싫어서 스스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여인인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사연 많아 보이는 그 여인은 알고 보니 심히 목마른 여자였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심한 허기와 무엇으로도 가시지 않는 목마름으로 결핍된 여자 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존재 자체가 결핍되어 있으니 누가 잘해줘도 고마운 줄도 모르고 가진 게 있어도 좋은 줄을 모릅니다. 누가 무엇으로 이런 여자를 만족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운 여자입니다.

평범한 여자가 아닙니다. 평범한 삶을 잘 사는 게 어려운 여자입니다.

목마름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엇을 해도 그 갈증을 채울 수 없습니다.

항상 갈증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있으니 무엇을 해도 만족이 안됩니다.

목마르고 굶주린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목마르고 심하게 굶주린 상태를 상상해 봅시다. 먼저 채우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고통스러우니까….

자기의 허기와 목마름을 채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어 빼앗고 갈취 해서라도 허기를 채워야 합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목마름을 해결할 대상을 만들어 그 대상에 심하게 집착 합니다.

그 대상이 자기의 목마름을 해결할 것 이라는 허상 때문입니다.

허상은 허상일 뿐입니다. 실상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허상으로 채우고 또 목이 마르니 또 가서 채우고를 반복하다 결국은 그 대상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그 대상에게 스스로 잡혀 버립니다.

잡혀서 노예가 되고 노예가 되면 아예 갇혀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중독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다섯이 될 수도 있고 여섯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삶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 져서 건져낼 방법이 없습니다.

존재적인 목마름은 인생 문제로 연결됩니다.

여인의 존재적인 목마름은 남편 다섯을 갈아치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인은 자기의 심한 결핍을 해결할 수 있는 게 남편 인 줄 알았습니다.

좋은 남자만 만나면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

예수님은 여자의 무너진 생활 속에 들어 있는 현실을 바로 보게 하십니다.

심한 갈증으로 목이 말라서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가 없는데….

이런 여인에게 어떤 남자가 남편이 된 들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남편이 나의 목마름을 채울 수가 없구나….

그리고 비로소 고백합니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어느 누가 그녀의 남편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여인은 자기가 목마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이 말라야 물을 찾게 됩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주님,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싶습니다. 저도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이 듭니다. 이 갈증을 해갈 할 물이 있다면 내게도 주소서’

심히 목마른 그 여자에게 예수 그리스도 께서 오셨습니다.

여인은 깊은 근원의 목마름을 해갈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속은 근본입니다. 근원으로부터 받아야 속의 갈증이 채워 집니다.

창조주 하나님! 나를 만드신 분이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