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장갑까지 끼고’ 선별진료소 줄… 서울 한복판에서 빚어진 ‘무거운 풍경’

입력 2020-03-10 18:05
10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코리아빌딩 앞에 코로나19 검진을 받으려는 빌딩 직원, 입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정우진 기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진단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줄곧 미디어를 통해 봐왔음에도 서울 도심의 빌딩에서 지내는 이들 수백명이 한꺼번에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광경은 퍽 생경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등장한, 잔뜩 찌푸린 하늘 만큼이나 어두운 풍경이었다.

10일 오전 서울 구로구 코리아빌딩 앞. 급히 설치된 선별진료소에는 코로나19 진단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빌딩 내 상가·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과 오피스텔 입주민 200여명이 50m가 넘는 긴 줄을 만들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맨발에 슬리퍼 차림인 입주민도 보였고 대기 시간 동안 혹시 감염될 것을 우려해 마스크는 물론 손에 비닐장갑까지 낀 사람도 있었다. 검사를 받기까지 무려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 빌딩 11층의 콜센터에선 전날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1시 기준으로 이 콜센터 관련 확진자 수가 64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1층 콜센터 직원·교육생을 비롯해 다른 층에서 근무하는 600여명의 콜센터 직원에 대한 검진 결과가 모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확진자 수는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빌딩 7~9층과 11층에는 ‘메타넷엠플랫폼’이라는 콜센터가 입주해 있었다. 지난 8일 11층에서 최초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해당 층은 곧바로 폐쇄됐지만 나머지 층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이튿날까지 정상 출근을 했다고 한다. 8층 콜센터의 한 근무자는 “같은 층에서 일하는 동료 근무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11층 직원과 밥을 같이 먹었다고 해서 서둘러 검진을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콜센터 업무의 특성을 감안하면 감염이 이미 퍼져나갔을 가능성도 있다. 7층 콜센터 직원 박모(28)씨에 따르면 직원들은 약 1m 정도 너비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간에서 전화로 고객응대 업무를 해 왔다. 지난 1월말쯤 사측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지만, 통화시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를 따르지 않는 직원이 더 많았다고 한다.

빌딩 13~19층에 위치한 오피스텔 입주민과 1층 상가 종업원들도 불안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입주민들은 빌딩 내 총 5대의 엘리베이터 중 4대를 상가·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쓴다. 1층의 한 커피숍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콜센터 직원들과 인근 주민들이 커피숍을 자주 찾는다”며 “그 중 어떤 사람이 확진자였는지 모르니 겁이 난다”고 했다. 해당 커피숍은 빌딩이 전부 폐쇄되기 직전인 9일까지도 문을 열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밀집사업장에 대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고, 서울시는 시내 모든 밀접근무지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구로 콜센터처럼 많은 인원이 한 공간에서 밀접해 근무하는 환경을 가진 모든 업체를 파악해 사전방역과 철저한 감염관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현수 정우진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