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위축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유가 폭락의 영향이 정유업계를 덮쳤다. 다음달 예정인 1분기 실적 발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유가가 하락하면 정유사들은 재고평가손실을 떠안는다. 원유를 구매해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 판매하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유사들은 장기 계약으로 원유를 미리 비축해둔다. 유가가 낮아지면 비축해둔 원유의 가치가 낮게 평가돼 손실이 발생한다.
지난 2014년 8월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유가가 12월이 돼 60달러 선으로 급락하자 정유사들은 일제히 적자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재고평가손실 등이 반영되자 정유업계 영업적자가 1조원에 달했다”며 “당시에는 석유제품 수요 덕에 반등했지만 이번에는 디플레이션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최악의 시기”라고 우려를 표했다.
지난 2일 배럴당 46.75달러에 거래되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의 가격은 지난 9일 배럴당 31.13달러로 내려앉았다. 일주일새 가격이 32% 하락했다. 브렌트유도 마찬가지로 배럴당 51.90달러에서 배럴당 34.36달러로 34% 가량 폭락했다.
국제유가 급락은 지난 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이 추가 감산 합의에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러시아의 반대로 감산이 무산되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과 원유판매가격(OSP) 인하를 발표한 영향이다. 사우디는 지난 8일 다음달부터 모든 국가에 판매되는 모든 유종의 가격을 배럴당 6~8달러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사우디가 본격 증산에 돌입해 초과공급이 심화되면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증권은 지난 2일 SK이노베이션이 1분기에 4040억원, 에쓰오일(S-Oil)이 3205억원 가량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30%의 추가 유가 하락이 발생하자 조성렬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10일 “영업적자가 각 사마다 2000억원은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며 “정유업계 전반이 비슷한 고통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주일새 정유업계의 적자가 최소 4000억원은 증가한 셈이다.
정유사의 수익과 직결되는 정제마진도 지난해 말부터 손익분기점(BEP)을 넘지 못했다. 통상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을 배럴당 4~5달러로 보는데 지난달 정제마진은 배럴당 3달러, 이번달의 정제마진은 배럴당 1.4달러에 그쳤다. 이같은 기조는 지난해 말 시작돼 지난해 12월에는 배럴당 -0.1달러, 지난해 11월에는 배럴당 0.7달러를 기록했다.
부진한 업황에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수요 감소까지 이어지며 정유업계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에너지의 울산 원유 정제공장 가동률을 10~15% 낮췄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12월부터 90%의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다. 보유재고를 최소화 하겠다는 전략이다. 에쓰오일은 50세 이상의 직원의 희망퇴직 실시를 검토 중이다.
회복 시점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공통적으로 ‘코로나19 종식’을 전환점의 필수조건으로 제시했다. 우선적으로 수요가 회복되어야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장 반등의 모멘텀은 찾기 어렵다”며 “코로나19로 위축된 수요가 회복돼야 분위기가 반전될 것”이라고 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