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상 초유 전 국토 봉쇄…CNN “팬데믹이라 부를 것”

입력 2020-03-10 17:02
이탈리아 정부가 9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 봉쇄령'을 내린 가운데 북부도시 밀라노의 중앙역에서 군인들이 승객들의 여행을 통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9000명을 넘어선 이탈리아 정부가 지난달 북부 지역에서 첫 내국인 감염 사례가 확인된 지 3주가 안돼 사상 초유의 전국 봉쇄령을 내렸다. 6000만명 전체 국민의 이동과 공공모임을 금지하는 초강수다. 이 같은 전 국가적 통제 조치가 내려진 것은 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이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9일(현지시간) 방송 연설을 통해 “코로나19 감염과 사망이 현저하게 늘고 있다”며 “더 이상 시간이 없다. 10일부터 이탈리아 전역이 ‘보호 구역’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국민은 집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다. 확진자가 사흘 연속 1000명대 폭증세를 보이자 북부 지역에 이동 제한령을 내린 지 이틀만에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날 기준 이탈리아의 확진자는 9172명, 사망자는 463명에 달한다. 두 수치 모두 중국을 제외하곤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전국 봉쇄령으로 이탈리아 국민들은 다음달 3일까지 긴급한 업무나 건강 등의 이유를 제외하곤 거주 지역 내에서도 외출이 제한된다. 모든 문화·공공시설이 폐쇄되고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를 포함해 모든 스포츠 경기가 중단된다. 콘테 총리는 “이번 조치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다”며 “우리 모두는 이탈리아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도 “나는 윈스턴 처칠(2차 대전 당시 영국 총리)의 오랜 연설을 생각하고 있다”며 “지금이 우리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지만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CNN은 “오늘부터 코로나19 창궐 상황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같은 날 이에 미치지는 못하나 “팬데믹 위협이 매우 현실화됐다”고 경고했다. CNN 의학 담당 수석 기자인 산자이 굽타는 “WHO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아직 코로나19를 펜데믹이라 부르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많은 공중보건 전문가들과 전염병 학자들은 세계가 이미 팬데믹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팬데믹에 대한 공식 규정은 없으나 코로나19가 질환이나 사망을 유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 지속적인 사람 간 전염, 전세계적 확산이라는 세 가지 일반적 기준을 모두 충족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응을 위해 팬데믹이란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 온라인매체 복스(VOX)는 전염병이 일부 지역에서만 창궐하는 유행성 전염병으로 간주될 경우 나머지 지역은 방관하며 질병이 국내로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데만 치중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처럼 지구촌 도처에 감염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는 이치에 맞지 않고 실효성도 없는 대책이다.

복스는 “세계적 유행병으로 정의될 경우 더 이상 방관자는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각국의 보건 당국자들도 국경 폐쇄 정책에 행정력을 낭비하는 대신 국가 내부에서 바이러스가 번지는 것을 막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