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랙스완이 경제 위기로?… ‘부채의 복수’ 시작되나

입력 2020-03-10 16:56 수정 2020-03-10 17:5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가 순식간에 ‘퍼펙트 스톰’의 위기에 휩싸였다. 퍼펙트 스톰은 여러 크고 작은 악재들이 동시에 몰아치며 경제 위기를 부르는 현상을 말한다. 공포의 시작은 코로나19라는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예측이 불가능한 ‘블랙 스완’(Black Swan)에서 비롯됐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세계 각국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더불어 실물 경제를 ‘올 스톱’ 시켰고, 증시·유가 등 금융시장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면서 ‘2020년 금융위기론’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 끝없이 치솟던 미국 증시의 붕괴 등 경제 위기론의 근거로 거론되던 요소들이 코로나19 사태로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및 저금리라는 유동성 기조로 지탱해 온 세계 경제에 ‘빚의 습격’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가뜩이나 경기가 나빠지고 있었던 상황에서 해외 여건이 더 악화된다면 (경제) 붕괴로 진행될 수 있다”고 10일 말했다.

코로나19가 부채 위기 부를까
코로나19 여파를 가장 빠르게 나타낸 건 글로벌 증시였다. 지난 9일(현지 시간) 미국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하루 새 7.60%나 폭락했다. 1987년 10월 19일 블랙 먼데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이어 역대 7번째로 큰 일일 하락폭을 기록했다. 증시 투자자들의 공포심을 나타내는 ‘VIX지수’도 54.46까지 치솟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고치(59.8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미국이 부랴부랴 경기 부양정책을 쏟아내면서 10일 세계 증시는 소폭 반등했다.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8.16 포인트(0.42%) 오른 1962.93에 마감했고, 코스닥지수도 0.87% 오른 619.97에 거래를 마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날 중국 우한을 방문하면서 중국 상해종합(1.82%), 일본 닛케이225(0.58%)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상승 마감했다. 미 S&P500 등 선물시장도 2% 안팎의 상승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방아쇠가 글로벌 경제의 부채 위기를 당길 수 있다는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개시장조작을 담당하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지난 9일(현지시간) 익일물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 거래 한도를 오는 12일까지 1000억 달러에서 150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레포 거래는 일정 기간 내 되파는 조건으로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그만큼 시중에 유동성이 공급된다. 돈을 풀어 시장 혼란을 안정시키는 전략을 다시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최근 10년간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글로벌 부채 규모다. 국제경제연구소(IIF)의 ‘2020 글로벌 부채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까지 전 세계 부채는 257조 달러(약 30경7000조원)로 추산된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부채 위기에 시달렸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레바논 등은 빚 위기에 처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와 유가 충격은 하이일드(고위험·고수익) 채권과 레버리지론,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등에 타격을 주고 있다”며 “금융시장 불신은 전염 효과가 있어 은행간 달러 자금 조달에도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영주 키움증권 연구원도 “코로나19 사태가 사모펀드와 부동산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른 투자자산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경제 체력이 약해지고 은행 대출 여력이 떨어지는 등 부채 고리로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관건은
글로벌 경기침체의 관건으로는 중국의 글로벌 부품 공급망 회복의 장기화 여부가 거론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모기지 등 파생상품 위기가 금융시장 패닉을 불러 실물위기와 기업 신용경색으로 발전한 사건이었다.

반면 이번 코로나 사태는 부품공급 사슬이 막히고 전 세계 제조업 가동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 상품을 팔수 없게 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기업의 자금줄이 묶이면서 금융시장 경색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전염병 예방을 위한 비대면 조치가 강화되면서 소비마저 급속히 얼어붙었다.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스(SARS)가 발생한 2003년과 비교해 국내총생산(GDP)은 3.9배, 무역규모 2.2배로 불어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체인 경색이 향후 3개월 이상은 지속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이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경우 위험해 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유럽과 미국의 확진자 급증세가 팬데믹으로 발전한다면 세계 경기가 동반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금융시장에선 미 연준이 기업들의 신용경색이 시작되면 경기침체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하 외에도 양적완화를 다시 동원할 것으로 관측한다. 미 연준이 지난 3일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하한 것도 증시보다 하이일드 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만큼 자금 시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양민철 기자,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