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자니윤(본명 윤종승)이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자니윤은 국내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 토크쇼를 선보인 코미디언으로 ‘토크쇼의 대부’로 통하곤 했다.
충북 음성 출신인 자니윤은 서울대 음대에 가려고 했지만 아버지 반대로 뜻을 접어야 했다. 젊은 시절엔 미군 부대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했고, 서울 충무로에서 영화 스태프로 활동하며 영화감독을 꿈꾸기도 했었다. 그의 삶이 크게 바뀐 것은 1977년 미국 NBC 인기 프로그램 ‘투나잇쇼’에 출연하면서였다. 진행자 자니 카슨에게 발탁돼 아시아인 최초로 무대에 오른 그는 30차례 이상 출연하며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국내 시청자에게 자니윤의 존재가 각인된 건 89년 첫 방송된 ‘자니윤 쇼’(KBS2)를 통해서였다. 프로그램은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미국식 토크쇼’였다. 가수 조영남이 보조 MC를 맡았던 이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끌었지만 1년 만에 폐지됐다. 자니윤은 과거 예능 프로그램 ‘승승장구’(KBS2)에 출연해 “당시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다. 나는 정치 코미디와 섹시 코미디를 즐겼는데 제재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자니윤 쇼’가 성공하면서 90년대 방송가에는 ‘주병진 쇼’ ‘서세원 쇼’ ‘이홍렬 쇼’처럼 특정 방송인의 이름을 내세운 토크쇼가 잇달아 만들어졌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자니윤은 한국 방송 시장에 토크쇼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라며 “미국에서도 인기가 상당했던 만큼 원조 한류 스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던 자니윤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대선 캠프에서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일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박근혜정부 시절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무 경험이 없는 자니윤의 발탁을 두고 반발 기류가 거세지면서 결국 그는 관광공사 사장이 아닌 감사에 임명됐다. 관광공사 노조는 이를 두고서도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자니윤의 관광공사 감사 임명은 낙하산 지시였고 여기에 반대하다 사임했다”고 폭로하기도 했었다.
자니윤은 관광공사 감사 임기 종료를 앞두고 뇌출혈로 병상 신세를 져야 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투병 생활을 시작했으며, 말년에는 치매까지 앓았다. 자니윤은 지난 4일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LA의 알함브라 메디컬센터에 입원했으나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은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메디컬센터에 기증된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