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치료제, 국내 코로나19 환자 1명에게 투여됐다

입력 2020-03-10 15:45 수정 2020-03-11 18:08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 중인 항(抗)바이러스제(렘데시비르)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환자 대상 임상시험이 국내에서 시작됐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선 10일 입원 중인 코로나19 확진자 1명에게 렘데시비르가 투여됐다. 임상시험 결과는 빠르면 5월쯤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렘데시비르는 글로벌제약기업 길리어드사이언스가 2009년 찾아낸 광범위 항바이러스 후보물질이다. 세포 및 동물실험을 거쳐 2018~2019년 에볼라 환자 대상 임상시험(임상2·3상)이 진행됐지만 중간분석에서 다른 치료제 실험군과 비교해 사망률이 높게 나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렘데시비르는 코로나19의 유전자가 든 RNA(리보핵산) 복제를 방해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걸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미국 코로나19 환자 1명에게 렘데시비르 투여 후 1주일만에 완치된 사례가 저명 학술지(NEJM)에 보고되면서 코로나19의 ‘잠재적 치료제’로 급부상했다. 또 코로나 바이러스 일종인 사스나 메르스에 대한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보여 같은 계열인 코로나19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국내 코로나19 환자 대상 임상시험은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제약사 주도 상업화 임상시험은 한국과 미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이탈리아 중국 등의 환자 1000명(중증 400명, 중등증 600명)을 대상으로 이뤄지며 195명 안팎의 한국 환자가 참여한다.
대상은 영상검사에서 폐렴이 확인돼야 하며 특히 중증은 산소를 공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소 포화도가 94%미만인 경우 해당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전문 치료제가 따로 없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임을 감안해 지난 2일 임상시험을 신속 승인했다.

임상시험기관으로 선정된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 경북대병원은 입원 중인 확진자 대상으로 참여자 모집에 들어갔다.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전문의는 “적절한 대상자 1명을 등록해 오늘 렘데시비르 주사 투여를 시작했다. 향후 50명의 임상시험 참여자 등록을 계획 중이며 이르면 5월 중에 결과가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는 10일 현재 22명의 확진자가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려면 기관임상윤리위원회(IRB) 승인을 받아야 하며 서울의료원과 경북대병원의 경우 아직 IRB 승인을 받은 참여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은 미국 국립보건원(NIH) 중심의 다국가 연구자 임상시험(임상2상)에 참여하며 지난 5일 식약처 승인을 받았다. 한국과 미국, 싱가포르, 일본 등의 코로나19 환자 394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서울대병원 연구책임자인 오명돈 감염내과 교수는 “아직 코로나19에 효과가 입증된 항바이러스제가 없다. 이번 임상시험으로 렘데시비르의 치료 효과를 확인하면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 코로나19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 관계자는 “현재 이곳 국가지정치료병상에 8명의 확진자가 입원 치료 중인데, 이들은 급성기가 지나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에 약을 쓸 필요가 없다. 앞으로 들어오는 환자들 중에 동의를 받고 임상시험 참여자를 찾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방지환 서울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신종 감염병의 경우 이미 개발됐거나 개발 중인 약을 다른 용도로 바꾸는 이른바 ‘약물 재창출 혹은 재활용(Drug Repurposing)’전략이 치료제 개발을 앞당기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리지날 신약의 경우 후보 물질 발굴에서 임상시험을 거쳐 최종 상용화까지 대개 10~15년이 걸리고 1조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렘데시비르 외에도 에이즈 치료제로 허가된 ‘칼레트라’와 말라리아치료약인 ‘클로로퀸(하이드록시클로로퀸)’, 인터페론 등 기존 약물에서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작업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비간’이라는 항바이러스제를 코로나19 치료제로 쓰고 있다.

이들 치료제는 코로나19에 정식 적응증을 받지못한 ‘허가사항 외(오프 라벨)’로 한시라도 급한 환자들을 위해 실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보건당국은 코로나19 환자에 처방되는 이들 약제에 임시로 건강보험을 적용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 약물이 코로나19 치료제로 허가받기 위해선 추가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 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지금은 별다른 치료약이 없는 긴급 상황으로 코로나19 치료에 쓰이도록 협조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치료 효능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불확실하다고 얘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큰 비용을 들여 임상시험을 하거나 적응증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는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15곳 안팎의 국내 바이오제약기업과 4곳의 정부 연구기관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과 예방 백신 개발에 본격 돌입했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이날 코로나19 ‘중화 항체’ 탐지용 단백질 제작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중화 항체는 바이러스를 무력화하고 소멸시킬 수 있는 항체다.
연구원은 회복기 환자의 혈액(혈장)에 존재하는 중화항체 생산세포(B세포)를 특이적으로 검출해 낼 수 있는 단백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탐지용 단백질을 통해 코로나19 항체 생산이 가능해지고 항체 치료제, 혈장 치료제 개발의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