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교육비] 정부가 입시 오락가락할 때마다 사교육비 뛰었다

입력 2020-03-10 15:34

사교육비 부담이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로 증가한 원인은 오락가락하는 정부 입시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잦은 입시제도 변경은 입시 환경에 불확실성을 높이고 이는 학부모·학생의 불안감 가중으로 이어진다. 공교육보다 입시제도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교육 업체들의 ‘불안 마케팅’이 힘을 얻는 토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정치권이 입시제도 변경을 요구해올 때마다 군말 없이 따라왔다.

교육부가 10일 발표한 ‘2019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5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상승한다. 2015년 23만6000원에서 이듬해 26만2000원, 2017년 28만5000원으로 뛴다. 이어 2018년에는 32만1000원으로 증가폭이 더 커지더니 지난해 36만5000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공식 사교육비 조사가 시작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8년 동안 3만9000원 올랐지만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12만9000원 증가했다. 고교생 학부모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2015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장 큰 변화는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불리는 새 국가교육과정 발표였다. 교육부는 새 교육과정에서 문·이과 통합, 토론 중심 수업, 학생 수업 선택권 확대를 시도했다. 새 교육과정에 적합한 대입제도 개편 작업에도 착수했다. 새 교육과정과 궁합이 맞지 않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비중은 줄어들고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새 대입제도 개편안이 발표될 예정이었던 2017년 5월 수능 절대평가와 고교학점제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교육부는 2015년 이후 논의했던 대입제도 개편안을 엎어버리고 수능 절대평가를 급하게 끼워 넣은 설익은 대입제도를 발표했다. 학부모 불만이 폭발하자 대입 개편안 발표를 1년 미루더니 공론화에 붙여버렸다. 이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정책과 고교내신 절대평가 등과 맞물리면서 입시제도의 불확실성을 끌어올렸다. 심지어 고1~3학년이 모두 다른 대입제도를 적용받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극심한 입시 제도 혼란 속에 2018년 8월 수능 위주 정시비율을 30% 이상 뽑도록 하는(정시 30%룰) 어정쩡한 내용으로 매듭지어졌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대입 개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 부총리와 교육부는 대입 제도 개편이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상곤 전 부총리 시절 발표된 대입 제도에 손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달아졌다. 교육부는 유 부총리가 직접 나서 “정시 확대는 없다”고 여러 차례 선을 그었지만 청와대·총리실·여당에서 정시 확대 목소리가 이어졌고 정·수시 비율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문 대통령이 10월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으로 정리한 이후에도 정시 비중 확대 폭과 적용 시점 등을 두고 혼란이 계속됐다. 지난해 사교육비 조사는 1·2차로 구분돼 진행됐다. 1차 조사는 5~6월에 3~5월 사교육비 지출 내역을, 2차 조사는 9~10월에 7~9월에 진행됐다. 2차 조사기간은 이른바 ‘조국 사태’와 상당부분 겹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사교육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대입 개편, 고교체제 개편 등 정부의 오락가락 교육 정책 때문”이라며 “사교육비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