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연기만 50편… 코로나19로 극장·배급사·관객 ‘삼중고’

입력 2020-03-10 15:10
영화 ‘기생충' 흑백판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영화계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투자·배급사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영화 개봉일을 미루고 있고, 신작이 없는 영화관은 줄어드는 관객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관객 역시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들이 언제 선보일지 몰라 아쉬움이 한가득하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지난달부터 영화관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영화관 관객은 734만7033명으로 전년 동월(2227만명) 대비 절반이 훌쩍 넘게 줄었다. 2월만 보면 1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 주말(7~8일) 동안 영화관을 찾은 관객은 23만752명으로 2주 전과 비교해 반 토막 났다. 과거 메르스 때도 주말 관객 수가 이렇게 바닥을 치진 않았다.

투자·배급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신작 개봉을 줄줄이 미뤘다. 평균 좌석판매율이 3~4%대인 상황에서 영화를 선보이면 손익분기점 돌파는커녕 큰 손해가 불 보듯 뻔해서다. 현재까지 개봉을 미룬 작품만 ‘기생충’ 흑백판을 포함해 ‘사냥의 시간’ ‘후쿠오카’ ‘뮬란’ ‘주디’ 등 50편이 넘는다. 도미노처럼 연기된 작품에 대작들까지 5~8월에 몰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형은 물론 중소 배급사들의 위기감 역시 상당하다. 한국 영화만 보더라도 ‘서복’ ‘영웅’ ‘모가디슈’ ‘반도’ ‘싱크홀’ ‘승리호’ 등이 여름 개봉을 저울질하고 있다. 모두 제작비가 200억원 안팎인 대작들이다.

일부는 영화 개봉을 내년 상반기로 연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개봉을 무한정 연기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비용 때문이다. 배급사들은 이미 들어간 마케팅 자금을 회수도 못 한 채 막대한 비용을 추가로 치르게 됐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개봉을 미루면 최소 수억에서 많게는 10억이 넘는 마케팅 비용을 회사가 또 치러야 한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손해를 감수하고 마냥 개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여파 속 개봉을 강행한 몇몇 작품에도 이런 비용 문제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생충’으로 한껏 달아올랐던 열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극장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화관들은 난국을 타개할 방도로 3월 초부터 ‘명작 재개봉’ 카드를 일제히 꺼내 들었다. 침체한 극장에 조금이나마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바람에서 표 가격도 5000원으로 낮췄다. CGV는 관객 추천을 받아 상영작을 선정하는 ‘누군가의 인생영화 기획전’을 프러젝트로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 ‘어바웃 타임’ ‘캐롤’ 등을 선보였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역시 ‘힐링무비 상영전’과 ‘명작 리플레이 기획전’을 통해 과거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들을 상영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상황을 헤결하기엔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다. 한 극장 관계자는 “재개봉 영화 예매율은 괜찮은 편이지만, 평소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라며 “코로나19 여파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끝나더라도 관객들이 영화관을 다시 찾기 시작하고 극장이 정상화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