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결방만은… 코로나가 바꾼 방송국 진풍경 명과 암

입력 2020-03-10 10:42 수정 2020-03-10 10:48
방청석에 앉아 동료의 공연을 보는 개그맨 이용진의 모습. 방송화면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로 방송국 제작진은 자구책 마련에 여념이 없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은 관중과 호흡하거나 길거리에서 시민을 만나는 콘셉트가 많아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어 시름이 깊다. 플랜B를 꺼내든 예능 프로그램 명암은 선명하게 갈렸다. 신선하거나, 지루하거나.

관중 없는 공개방송… 뜻밖의 재미 선사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방송가가 ‘울며 겨자먹기’로 쥔 카드가 도리어 호재로 작용한 경우가 있다. tvN의 ‘코미디 빅리그’다. 관객과 호흡을 맞추는 공개 코미디 공연이지만, 감염병 우려로 예정된 녹화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쳤다. 제작진은 ‘결방만은 막자’는 심정으로 관중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객석은 출연진으로 채워졌다. 개그맨들은 허투루 감상하지 않았다. 관객보다 과장된 리액션을 선보이며 의기투합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방청객이 개그맨보다 더 웃기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MC유희열이 방청석에 앉아 그룹 '여자친구'의 무대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모습. 방송화면 캡처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도 비슷한 방법으로 난관을 돌파했다. 방청객과 함께하는 녹화가 어렵게 되자 출연진이 그곳에 앉았다. 특히 MC 유희열이 혼자 무대를 보며 ‘아빠 미소’ 짓는 사진은 큰 화제를 불렀다.

발상의 전환으로 난관 돌파한 예능들

MBC TV 예능 ‘놀면 뭐하니?’ 제작진은 ‘방구석 콘서트’를 기획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을 취소한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대신 방송해주는 프로젝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에서 제작진의 선택은 ‘더 힘든 쪽을 돕자’였다. 시청자에게는 용기를, 아티스트에게는 희망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구석 콘서트'를 기획하는 MC 유재석과 혁오밴드의 모습. 방송화면 캡처

Comedy TV ‘맛있는 녀석들’도 촬영무대를 옮기면서 변화를 꾀했다. 이들은 주로 맛집을 찾아다녔으나 코로나19가 확산한 후 장소를 옮겼다. ‘엄마 아빠는 요리사’ 특집으로 동료의 가정에 방문해 먹방을 선보이고 있다.

한시적 호재일 뿐… 장기적 대안 마련 시급

호재를 입은 예능은 소수에 불과하고 이런 땜질식 대안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모든 가요 프로그램은 관객 없이 진행하고 있다. 환호성 없는 무대를 보는 시청자는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KBS2 ‘전국노래자랑’을 포함해 대다수는 결방하거나 스페셜편으로 대체하고 있다. 볼거리가 사라졌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를 대비한 조직적 대안이 필요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플랜B로 잠깐의 신선함을 잡을 수는 있으나 근본적이지 않다”며 “관객이 있어야 공연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청자는 악재를 극복하려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통할지는 모르겠다”며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국이 침체된 상황일 수록 예능의 임무가 막중해진다는 평가도 있다. 정 평론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뤄지고 있는 이 때 방송, 특히 예능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며 “예능 프로그램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방송국 차원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