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2)

입력 2020-03-10 09:47
여자가 일본 말로 겸연쩍어하며 재차 인사를 했다.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가씨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호텔 프런트로 내려갔다.

“모르는 여자가 내 방 앞에 있습니다. 당장 조치해주세요.”

호텔 직원은 빙그레 웃으며 되레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일본인도 그렇게 여자를 대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냐는 표정이었다.
2018년 3월 서울 종로YMCA빌딩 모습. 주인공 노무라 모토유키가 1970년대 초 중앙정보부 요원의 감시를 받으며 투옥했던 YMCA호텔이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선생님, 그 여자는 선생님의 한국어 개인 교사입니다. 그 여자분이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그 여자분을 들이지 않는다면 그 여자분은 파출소 신세를 져야 합니다.”

난감할 노릇이었다. 분명 강하게 내쳐야 하나, 그렇다고 목사 신분에 매정하게 거리로 내몰 수도 없었다. 호텔 직원과는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다시 내 방으로 올라오니 여자는 그때까지 문 앞에서 다소곳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닳고 닳은 직업여성 같아 보이진 않았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 방에서 샤워하고 싶어요. 종일 샤워를 못 했어요. 저를 들여보내 주세요.”

여자는 손짓 발짓 해가며 애원했다. 들어오라고 하자 얼굴이 환해졌다. 일단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침대 위에 앉더니 엉덩이로 침대의 쿠션을 즐겼다. 당돌한 감도 없지 않았으나 그리 나쁜 여자 같지 않았다.

내가 배운 서툰 한국말로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여자는 ‘송정동’이라고 말했다.

“송정동? 청계천?”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계천 슬럼가에 사는 여자였다. 어떻게 내 방까지 찾아들었는지는 모르나 송정동이 목회 사역지인 내게 우연치고는 놀라운 일이었다. 여자에게 씻으라고 권했다. 여자에게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초특급 호텔인 셈이다.

<계속>

글·사진=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