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입국제한에 한탄하는 기업들…“양국 갈등으로 또 사업 차질”

입력 2020-03-10 06:00
수출 규제·지소미아 이어 입국 제한 조치로 또 양국 갈등
사태 장기화 경우 사업 전략 변화 불가피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간신히 대화를 이어나가려던 한·일 양국 기업이 또다시 악재에 부딪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인 입국 제한이 일본까지 확대되면서 전자업계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당장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인적 기술 교류는 물론 영업과 마케팅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기업들의 사업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0일 국내 주요 전자 기업들은 양국 입국 제한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에 대비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생산라인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기술 인력의 입국이 사실상 막히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 피해가 우려된다. 신규 장비 도입 및 유지·보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장비 도입 초기에는 일본 엔지니어들이 생산라인에 방문해 현지 사정에 맞게 테스트와 조율을 하는 작업이 필요한 데 인적 교류가 막히면 가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산 장비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은 미국(44.7%)과 일본(28.2%)이 양분하고 있는데 지난해 국내에 들여온 반도체 제조 장비 중 3대 중 1대가 일본산이다. 차세대 반도체 생산라인으로 삼성전자가 집중 육성하고 있는 극자외선(EUV) 공정의 결함 검사 장치, 불순물 세정장치 등이 대체가 어려운 일본산 장비들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를 포함해 양국에서 사업을 운영해온 주요 기업들은 이번 조치가 물류 이동을 제한하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단기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통상적인 업무는 전처럼 일본 기업의 국내 법인을 통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양국에 지사를 둔 업체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기업과 거래해온 일본 기업 다수가 합작·자회사 형태로 한국에 공장을 두고 있고, 국내 기업도 일본에 법인을 두고 있어 제품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달부터 출장 자제 상황에 대비해 원격시스템으로 소통해온 점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향후 입국 제한 조치가 연장되면서 공급 차질과 소비 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기업들의 장기 사업 계획에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재계 관계자는 “베트남과 인도에 이어 일본까지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단행하면서 수출과 투자, 제품 홍보 등 연간 경영계획에 변화를 줘야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마스크를 쓴 시민이 일본 도쿄 올림픽 박물관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외산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일본 TV 시장에서 선전해오던 기업들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LG전자는 오는 7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의 프리미엄 TV시장을 공략해왔다. 올림픽 시즌을 맞아 초고화질 8K OLED 진영 확대를 노렸지만 양국 관계 악화가 소비자 심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이번 조치로 양국 기업 간 고위 인사들의 왕래도 뜸해질 전망이다. 국내 기업 총수들은 일본을 수차례 직접 방문해 사업을 직접 챙겨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에만 4차례 일본 출장길에 오르며 일본 2위 통신사 KDDI와의 5G 장비공급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기업들은 수출 규제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갈등에 이어 양국 정부의 입국 제한 조치까지 더해지자 불만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정치·외교 사안으로 비화해버리면서 국내 브랜드에 악감정이 쌓이게 될 것”이라며 “경영환경도 좋지 않은데 변수가 늘어나면서 올해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