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잠시 돌봐줄 지인이 오자마자 주민등록등본 들고 약국으로 뛰어갔는데, 결국 한 장도 못 샀어요. 이러면 5부제가 무슨 소용이 있나요?”
서울 영등포구에서 자택근무 중인 30대 워킹맘 임모씨는 9일 마스크 판매 5부제가 시행됐지만 마스크 확보에 실패했다. 아이를 잠시 맡아줄 친구가 집에 오자마자 주민등록등본을 손에 쥐고 동네 약국으로 뛰어갔지만 허탈함만 갖고 돌아와야 했다. 약국 개점이 불과 20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마스크는 모두 팔려나간 상태였다.
어린이·노약자 대리구매와 관련한 불만도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오전 8시부터 한 시간 내내 아홉 살 손자와 함께 강북구 미아동의 약국을 전전한 문모(71) 할머니는 간신히 소아용 마스크 2장을 손에 쥐었지만 분통을 터뜨렸다. 문 할머니는 “손주가 셋인데 각각 2010년, 2011년, 2014년생이라 월요일, 목요일, 금요일에 손주를 하나씩 데리고 약국을 찾아다녀야 한다”며 “나 뿐 아니라 애들도 보통 힘든 게 아니라 너무 짜증나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약국에서는 마스크 판매 5부제와 대리구매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노인들이 화를 내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포착됐다. 70대로 보이는 한 할머니는 강북구의 한 대형약국에서 ‘오늘은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요일이 아니다’라는 약사의 설명에 “왜 나한테 거짓말을 하느냐. 다른 사람은 다 주면서 아침도 못 먹고 나온 나한테는 왜 안 주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약사 노모씨는 “마스크 판매를 왜 다 약국에 일임해서 이 난리를 만드느냐”며 “마스크 판매도 일인데, 정책 설명도 결국 다 약사가 떠안았다”고 토로했다.
일부 동네약국에서는 마스크를 따로 빼달라는 단골 손님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60대 약사 김모씨는 “작은 약국은 결국 동네장사인데, 단골이 하나 빼달라는 말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느냐”며 “마스크 한 장 팔아도 얼마 남지도 않는데 우리만 욕받이가 되라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국마다 다른 마스크 입고 물량과 시간 때문에 발생하는 혼선도 여전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30대 주부 장모씨는 “정부가 별의 별 애플리케이션을 다 만들면서 왜 마스크 입고 관련 앱은 하나 못 만드느냐”며 “어느 약국에, 몇 시에, 몇 장의 마스크가 들어온다는 앱 하나만 만들어도 되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5부제 시행에도 마스크 대란이 계속되자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마스크 판매 2부제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혼란이 없는 대만과 대비된다. 대만은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1인당 2매 한도로 마스크를 판매중이다. 지난 5일부터는 1인당 구매한도를 3매로 늘렸고, 어린이의 마스크 구매는 4매에서 5매로 늘렸다. 대리구매 범위도 훨씬 넓어서 친구나 가족도 우리의 건강보험증에 해당하는 NHI카드만 맡기면 마스크를 살 수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품절 사태는 벌어지지 않고 있다.
대만이 이처럼 마스크 대란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사흘 만인 지난 1월 24일 마스크 수출을 중단하고, 1월 말에는 국내 생산 마스크를 전량 정부가 구매하는 등 선제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대만보다 지난달 25일에야 마스크 수출을 10%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