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이 ‘원유 가격 인하’라는 치킨 게임에 돌입하면서 9일 국제 유가는 물론 글로벌 증시·환율 등이 급격하게 출렁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공황에 휩싸인 세계 경제에 또 하나의 돌발 악재가 추가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오일 파동’은 지난 6일(현지시간) OPEC+(OPEC 회원국 및 비 OPEC 산유국 연합체) 회의에서 ‘원유 감산’ 협상이 러시아의 반대로 불발되면서 촉발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날 원유 가격 인하 방침을 발표했고, 국제 선물시장에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장중 한때 배럴당 27달러 수준까지 떨어지며 30% 넘는 낙폭을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걸프전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이라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이날 증시 개장 직후 10% 폭락하며 ‘거래 일시 중지’ 사태를 맞기도 했다.
오일 파동을 바라보는 세계 금융시장의 시선은 ‘왜 하필 지금인가’에 쏠린다. 이미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산업 생산이 위축되면서 수요 감소(가격 하락)에 시달리던 유가 시장에 극심한 불확실성을 초래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속내’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유가 전쟁’의 타깃이 미국 셰일가스 업계를 향해 있다고 본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러시아는 서는 원유 생산을 줄여도 미국 셰일오일 생산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감산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독일과 러시아 간 가스관 구축 사업(노드스트림2)에 반대하는 미국에 독립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보 역시 러시아를 ‘원유 감산’이란 협상 테이블로 다시 앉히기 위한 고육책이란 분석이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유가 하락이란)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상대방을 협상으로 끌어 내겠다는 전략”이라며 “다만 OPEC 정례회의가 오는 6월 예정된 만큼 유가 급락이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과 남미 등 원자재 생산국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조민아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