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안사는데요” “신천지 아닌데요” 거짓말 하는 확진자들 왜?

입력 2020-03-09 16:38
대구 거주 사실을 숨긴 채 입원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확진된 환자로 인해 폐쇄된 서울 중구 백병원 앞에서 의료진 등 병원 관계자와 경찰 등이 9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들이 대구 거주나 신천지 신도 여부 등을 솔직하게 알리지 않아 의료기관이 갑자기 폐쇄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기적인 거짓말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수한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엔 ‘확진자 낙인’을 피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신이 신천지 신도임을 밝히지 않은 채 근무하던 분당서울대병원 여직원이 9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성남시와 병원 측에 따르면 이 병원 직원인 A씨(36·여)는 전날 오후 성남중앙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체를 채취했고, 이날 오전 양성 판정을 받았다. A씨는 성남시 신천지 명단에 포함돼 있었으나 병원 측이 한 달 전쯤 조사할 때 자신이 신도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은 결국 이날부터 A씨가 근무했던 통증센터를 2주간 폐쇄키로 했다.

8일에는 서울백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78세 환자로 인해 2개 층이 폐쇄됐고, 다른 환자와 의료진을 포함한 직원 70여명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집이 대구인 이 환자는 지난 3일 내원 당시 대구 방문 여부를 묻는 병원 측의 질문에 5번이나 거짓말을 했다. 앞서 지난달 24일에는 대구 서구보건소의 감염예방팀장이 자신이 신천지 신도라는 사실을 숨기다가 확진판정을 받은 뒤에야 이를 털어놨다. 코로나19가 대구에서 급속히 확산되는 시점에 해당 보건소는 일부 시설을 폐쇄하고, 방역 담당 직원 30여명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지난달 25일 오전 대구시 서구보건소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는 모습. 연합뉴스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확진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불이익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직 확진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괜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태도인 셈이다. 전병율 차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확진자들이 역학조사 단계에서 거짓말하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서울백병원 확진자도 대구 출신이라는 이유로 병원 진료를 거부당하자 거짓말을 했다.

감염병 환자가 보건 당국에 거짓 진술을 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거짓진술을 할 경우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서울백병원 확진자의 허위진술 여부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확진자들의 거짓말을 줄이려면 의료기관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엄중식 가천의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병 유행 상태에서는 한 사람의 거짓말이 부를 수 있는 사회적 피해가 굉장히 크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확진자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며 “솔직하게 정보를 공개해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신뢰를 사회가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