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영화관을 찾는 발길이 뚝 끊긴 가운데 ‘펜데믹(전염병) 무비’가 안방에서 날개를 달았다. 집으로 자신을 ‘자가격리’ 해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이 미래를 예견한 듯 현실과 꼭 들어맞는 전염병 소재 영화들에 주목하면서 이들 작품이 영화 차트에 다시 진입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영화 ‘컨테이젼’은 영화진흥위원회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에서 역주행을 하는 대표적 사례다. 맷 데이먼 주연의 이 영화는 2월 셋째 주(2월 17~23일) 기준 최신작들을 제치고 단번에 4위에 올랐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제작 및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맷 데이먼을 비롯해 주드 로, 기네스 펠트로, 마리옹 코티야르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이목을 끌었으나, 2011년 개봉 후 28만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컨테이젼이 시선을 끄는 이유는 작품 속 이야기가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와 놀랍도록 흡사해서다. 백신도 없는 상태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바이러스로 인해 시민들이 발열과 기침 등 독감 증상에 시달리는 모습을 그렸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수만 명을 감염시키는데, 이런 혼란을 틈타 가짜 치료제를 파는 사기도 판친다. 특히 해당 바이러스의 숙주가 박쥐였다는 설정이나 “접촉을 통해 감염되니 얼굴을 만지지 말라”고 하는 미어스 박사의 말들이 코로나19를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2000년대 유행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사례를 참고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영화로는 ‘감기’가 있다. 감기 역시 코로나19와 유사한 호흡기 질환을 다룬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호흡기를 통해 초당 3.4명이 감염되고 치사율 100%의 변종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퍼지자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도시를 폐쇄한다. 감염자와 비감염자 구분 없이 격리되는 암울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바이러스의 발생 이유 등이 컨테이젼만큼 흡사하지는 않다. 그러나 치명적 바이러스의 외래 유입이란 공통점이 화제를 모으면서 온라인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같은 기간 17위를 차지했다. 장혁 수애 유해진 등 스타 캐스팅으로 개봉 당시 311만명이 봤던 흥행작이기도 하다.
호흡기 질환을 소재로 하진 않았으나 전염병을 다뤄 주목받는 예도 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연가시’는 변종 연가시가 인간을 숙주로 삼고 조종해 익사하게 하는 치사율 100%의 전염병을 소재로 했다. 갑자기 영양실조 증세로 익사한 이들이 연가시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병원과 약국은 구충제를 구하러 온 시민들에 에워싸인다.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과 마트에 줄을 서는 시민들을 떠오르게 한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도 전염병이 소재다. 한 사람이 갑자기 운전하다 눈이 멀어버리고, 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실명은 모든 접촉자에게 퍼진다. 시력을 잃은 사람들은 정신병원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그린다.
펜데믹 무비의 역주행을 이끄는 건 국내외 OTT 플랫폼이다. 지상파 3사가 합작한 웨이브를 비롯해 넷플릭스, 왓챠플레이를 통한 콘텐츠 소비가 급증했다. 대표적으로 왓챠플레이는 코로나19 경보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올라간 지난달 23일 하루 시청 시간이 1월 중순보다 14% 정도 늘어났다. 지난 1일에는 무려 37%가 늘었다. 코로나19가 감소세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OTT를 통한 콘텐츠 소비의 증가세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타인과 거리 둔 채 문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자동차극장이나 가정용 빔프로젝터 소비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