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감염병 매뉴얼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인색했다. 매번 국가적 재난이 터진 뒤 시스템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늦게 나오지만 곧 잊혀 졌고, 이번에도 약자는 그저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국민일보는 중증장애인, 한부모가정, 비혼가정, 조손가정, 홀몸노인들이 지난 한 달 간 살아 온 이야기를 연이어 보도한다.
약자에 더 가혹한 재난 ③전염병은 생계의 목을 죘다
“애들 먹이는 게 먼저라 공과금 같은 건 밀리는 거죠.”
전염병이 무서운 건 먹고 사는 문제까지 흔들어서라고 비혼모 김진영(가명·33)씨는 생각했다. 그녀는 주사기를 만드는 업체에서 일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면서 지난달 초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내리막을 걷던 업체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결국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업체는 직원들에게 언제 다시 문을 열지 모르겠다는 말만 했다고 한다. 사실상 퇴직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다.
한 달 80만~100만원 벌이가 순식간에 끊겼다. 기댈 수 있는 돈은 시설에서 지원받는 80만원뿐이었다. 남는 돈으로 그녀는 쌀부터 샀다.
코로나19는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비혼모에게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는 상황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나온 뒤 곧 모든 보육 시스템이 멈춰섰기 때문이다. 국가의 돌봄 시스템이 막혀 시간제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게 됐다. 그녀는 9살 딸, 7살 아들과 함께 자체 격리생활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장을 본 게 5일 전이었다.
햇반, 참치 통조림, 라면, 고구마, 계란…. 사재기라도 해야 할 듯싶어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가급적 오래두고 먹을 수 있는 식료품들을 샀다고 했다.
“다시 마트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아요. 동네에서도 확진자가 나왔고, 그 확진자 자녀들이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녀요. 감염도 걱정이지만 아이 둘만 집에 남겨놓을 수가 없잖아요. 근데 식료품이 떨어져가고 있어요.”
그녀는 마스크 사러나갈 엄두도 내지 못해 지난해 말 후원받은 마스크를 아껴 쓰는 중이다. 김씨는 “당장 급한 쌀만 다른 지방에 사는 언니한테 부탁을 해놓긴 했는데 그 전에 떨어 질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그녀와 처지가 비슷한 한부모 가정 3가구는 재개발지역 빌라 한 곳에 모여 산다. 다른 이웃들은 대부분 이사를 나가 주변은 횅하다.
“집 대로변으로 도로가 보이는데 맨날 앰뷸런스가 오가는 소리가 들려요. 숨이 턱턱 막히고 고립된 느낌이에요.”
아이가 착해 투정부리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김씨 같은 한부모가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앞에서 더 쉽게 흔들렸다. 파트타임,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일자리는 감염병으로 멈춘 도시에서 가장 빨리 사라지며 불안전성을 드러냈다. 혼자 일하고 아이도 돌보며 간신히 가정을 꾸려나가던 이들에게 코로나19가 더 위협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싱글맘 이주희(가명·48)씨도 같은 처지다. 이씨는 딸이 돌이 됐을 무렵부터 혼자 아이를 키웠다. 10년 넘게 시간제 일자리만 전전했다. 그녀는 한부모 가정 대상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빌라에 살았는데, 이곳에 계속 머물려면 월급이 155만원을 넘으면 안 됐다. 월 20만원인 한부모가정 수당 지급기준도 이 금액이어서 그녀는 가난을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한 달 100만원 정도 되는 저임금 일자리에 의탁해 지냈고, 안 먹고 안 쓰며 버텼다. 하지만 올해 중학생이 되는 딸의 학업을 위해서는 돈이 조금 더 필요했다.
운 좋게 시간 연장 보육교사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월 급여가 112만원밖에 안되지만, 4대 보험까지 적용받을 수 있어서 싱글맘에게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감염병이 희망을 앗아갔다.
지난 2일부터 일하기로 했던 게 9일로 밀렸다가 23일로 다시 연기됐다. 그때라도 출근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처지에 1개월의 공백은 버겁다. 매달 나가는 전세자금 원리금과 관리비만 30만원이다. 지난달에는 구직활동을 하느라 아르바이트를 며칠밖에 하지 못해 50만원도 벌지 못했다. 이씨는 “당연히 3월 2일부터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고 5만원에 샀던 중고 냉장고를 바꿨더니 생활비가 바닥났다”고 했다.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코로나19가 대구를 덮친 와중에도 구청, 시청을 뛰어다니며 긴급생활자금 지원을 알아봤다. 하지만 2년 전 받았던 긴급지원 자금이 발목을 잡았다.
“그때 쌀도 없어 못 먹을 정도로 너무 힘든 상황이어서 한번 긴급생활자금을 받았어요. 그거 때문에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또 지원하려면 지난 두 달간 일한 직장에서의 증빙 서류를 떼어오라고 하는데, 저는 식당이나 가게에서 남의 자리 메워주는 식으로 일을 했거든요. 누가 서류를 떼어주겠어요.”
이씨는 딸과 빌라에서 머물며 재난이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잠깐이라도 일할 곳이 없나 찾고 있는데 코로나19 여파 때문인지 이마저도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출산을 앞둔 한 비혼모는 감염병 앞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대구에 사는 A씨는 경기도로 이사를 준비 중이었다. 경기도의 한부모 가정 지원이 좋다는 이야기에 결심한 일이었다. 이사 준비를 마치고 대구 친정집에서 산후조리용품을 챙겨왔는데, 코로나19가 퍼졌다. 미리 예약을 해놨던 경기도 병원에서는 “대구에 갔다 오셔서 병원 이용이 어렵다”는 알림을 보내왔다. 출산 예정일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대구 미혼모협회 아임맘 김은희 대표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번 상황에서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며 “사회적 약자들도 문제지만, 한부모가정 등 이제 막 일어서보려는 취약계층도 어려운 상황인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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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언 김판 박세원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