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부적응’ 극단 선택… “가혹행위 없어도 보훈대상”

입력 2020-03-09 09:28

군대 내에서 구타나 폭언 등 직접적인 가혹행위가 없었더라도 군 생활과 자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면 보훈 보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김상환 대법관)는 자살한 군인 A씨의 유족이 “국가유공자 및 보훈 보상대상자 비대상 결정 취소해달라”며 낸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에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2014년 6월 육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A씨는 이듬해 5월 휴가 중 선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 어머니는 보훈청에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신청을 했지만 “A씨의 사망이 군의 직무수행 또는 가혹행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에 A씨 어머니는 보훈처의 국가유공자 비대상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하고,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보훈보상 대상자로라도 인정해달라고 예비적 청구를 냈다.

1심은 보훈처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복무 생활로 A씨에게 정신질환이 발병했다거나 우울증이 악화해 자살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A씨의 자살은 주로 개인적인 사정과 정신적 어려움 등으로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행해진 것으로 보이므로 보훈처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설명했다.

부대 내에서 A씨에 대한 직접적인 구타나 폭언이 없었고, 상관의 질책도 A씨를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판단이다. 2심도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도 A씨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봤지만, 보훈 보상대상자에는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사망과 직무수행 사이 인과관계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A씨의 유서, 육군훈련소 복무적합도 검사, 입대 전 정신과 치료 전력 등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대법원은 “A씨가 극심한 직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돼 정상적인 인식 능력 및 정신적 억제력 등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것으로 추단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의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다”며 “원심은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경위와 동기 등에 관해 좀 더 면밀하게 따져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