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국가 간 방역 협력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와중에 한국과 일본이 서로 입국금지 조치를 주고받으며 충돌했다. 코로나19 대응에서 난맥상을 보인 아베 신조 정권이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은 게 근본 원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코로나19가 지역사회 전파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징후가 뚜렷이 나타났다. 하지만 방역 당국의 소극적 대응과 검사 역량 부족, 불투명한 정보 공개 탓에 전모조차 파악이 어렵다. CNN 등 외신은 일본 실제 감염자 수가 공식집계보다 10배 많은 1만명으로 추산한다. 아베 정권은 방역 실패 탓에 역점 사업인 도쿄올림픽까지 취소 가능성이 거론되자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일본조치가 방역보다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5일 밤늦게 한·중 양국 입국규제 강화를 발표하면서 한국 정부에 사전 설명도 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6일 일본 조치에 이해를 표명하는 등 중·일 간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암시한 것과 비교하면 온도 차가 있다. 일본이 한·일 갈등을 부추기려 의도적으로 한국을 도발했다는 추측까지 나온다.
청와대는 8일 ‘정부가 중국은 놔두고 일본에만 과잉대응한다’는 지적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일본의 과도하고 불합리한 조치에 절제된 방식으로 상응조치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정부 조치는) 감염병 유입에 대한 철저한 통제에 주안점을 두고 내린 결정”이라며 “한국이 강경한 게 아니라 일본의 5대 조치가 과잉”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우리 정부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일 관계는 최근 강제징용과 수출규제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이미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이다. 국민감정을 고려해서라도 정부가 맞대응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비자 면제는 일반적으로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되는 영역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대일 입국 규제를 강화했다고 한국의 방역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조치는 외교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며 “국민정서를 고려하면 일정 부분 불가피했다. 한·일 관계는 다른 국가와의 관계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비자는 상호 조치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것은 주권 국가로서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그동안 대원칙으로 삼아왔던 명분이 일본 문제를 통해 허물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중국인 입국금지 요구 등 비판론에 맞서 ‘국경개방 방역’의 대원칙을 준수해왔다. 큰 틀에서 국경을 개방하되, 감염자가 많은 지역의 입국자만 제한적으로 차단하는 식이다. 결국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일본의 일방적 조치에 우리 정부가 맞서면서 국경 개방 방역의 명분도 함께 퇴색한 측면이 있다는 의미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