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 살고 있는 크리스티나 모이는 지난 주말 식료품을 사러 동네 마트에 갔다가 수백명의 사람들이 발디딜틈 없이 몰려있는 상황을 목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면서 사람들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선 것이다. 크리스티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침착해 보였지만 그런 모습은 오래가지 않았다”면서 “휴지와 우유 등이 내가 눈을 돌리는 속도보다 빠르게 사라졌다”고 묘사했다.
영국 BBC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로 소비자들이 마스크와 생필품 등을 사재기하면서 가격 폭등과 재고 부족 등의 현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8일 전했다.
확진자가 늘어날수록 사재기 현상이 심각해지는 사례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지난 7일 일부 지역에서 시민들이 식료품과 생필품을 비축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마트 등으로 몰려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확진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는 미국에선 워싱턴주 타코마의 코스트코 매장에서 판매대에 진열된 두루마리 휴지가 입고된 지 몇 분 만에 동이 났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사재기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에선 마스크와 손 세정제 등의 가격이 폭등했고, 재고가 부족해 개인별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방역 또는 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마스크가 바닥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감염되지 않은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사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영국의 약국 체인인 부츠와 로이드에서는 지난주부터 손 세정제를 1인당 2병 이상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재기가 계속되면 위기 상황은 악화될 것”이라며 “사재기는 재난을 대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닥치지 않은 공포에 대한 심리적 방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심리학자 스티븐 테일러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받아들이는 위기의 정도에 비례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면서 “손을 잘 씻고 기침 예절을 지키는 게 지금 상황에서 해야 하는 일의 전부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같은 극적인 상황에서 손 씻기는 평소와 다름없는 행동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사재기에 돈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재기로 인한 가격 폭등 등을 막기 위해선 평소에 가족의 생필품을 여유있게 준비해 두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데이비드 새비지 호주 뉴캐슬대 행동경제학 교수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나쁜 일에 대비하는 것은 이성적인 행동이지만, 2주간 격리될 수도 있다고 해서 찐콩 통조림 500개를 사는 건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