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법관 “‘5분 재판’ 멈추려면 법관 2~3배 증원해야”

입력 2020-03-08 11:28

현직 판사가 사건 급증으로 인한 ‘5분 재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관 숫자를 2~3배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차성안(44·사법연수원 35기) 서울서부지법 판사는 전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5분 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해외 사법선진국의 2~3배가 넘는 비정상적인 사건부담에 직면하고 있다. 법에 따른 충실한 재판을 불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구조”라며 “법관을 3배, 아니 정 안 되면 2배로라도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판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언론 인터뷰는 자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며 “글을 올린 취지 그대로 봐달라”고 말했다. 차 판사는 ‘양승태 사법부’ 당시 상고법원안에 대한 비판적 언론 기고 글을 작성하면서 법원행정처에서 사찰 피해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차 판사는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제대로 사건을 처리하기 시작하면 처리되지 못한 미제사건이 급증하고, 처리 속도는 급감한다. 재판이 느려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최고 수준으로 싸고 빠르게 처리해 주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3분·5분 재판이 뭐냐고 욕하면 되고, 느리더라도 법에 충실하면 신속성이 떨어진다고 욕하면 된다”며 자조했다. 법관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충실한 재판을 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반대로 신속한 재판을 하면 제대로 된 판단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 받는 현실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차 판사는 “물적 한계가 질적 한계를 결정짓는 이 단순한 진리에 대해 아무도 진지하게 직면하지 않고, 실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학계, 법조 언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조단체를 포함한 전문가의 집단 무능력 상태다. 제대로 된 재판이 무엇인가에 대한 무지와 체념이 결합된 무능력”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해법으로 법관 증원을 제안했다. 차 판사는 “매년 300명씩이라도 법관을 증원하자”며 “국가예산 500조원 중 2~3조원 수준인 전체 사법부 예산에 매년 몇천억원을 덧붙이면 된다”고 주장했다. 최근 법조계에서 커지고 있는 청년변호사 실업문제의 해결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구체적으로는 “단계적 전면 심증 개시와 결합된 토론형 30분 재판 모델, 안 되면 15분 재판 모델 시범 재판부를 각급 법원별, 재판절차별로 1~2개 이상씩 만들어야 한다”며 “사건 배당을 2분의 1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주고 근로시간과 절차진행 방식을 엄격하게 구분한 후 기존 5분 서면위주 재판모델과 성과, 만족도를 비교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 판사는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포기해야 하는 100% 처리에 급급한 사건부담을 안기면서 법관 정원을 도저히 법에 따른 재판을 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동결시키는 것은 위헌”이라며 “판사가 하는 재판에 대해 욕을 제대로, 정확히, 생산적으로 해주면 좋겠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