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남편 조모(가명)씨의 범행 여부를 검증했다. 이 과정에서 조씨에게 내연녀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사라진 범행 도구를 추적해 주목받기도 했다.
7일 오후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침대 위의 살인자-관악구 모자 살인사건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유력 용의자인 조씨의 행적을 좇았다.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은 2019년 8월 22일 관악구에 위치한 한 다세대주택에서 박은정(가명‧42)씨와 민준(가명‧6)군이 흉기에 여러 차례 찔린 채 살해된 사건이다.
모자가 누워있던 침대는 피로 물들어 있었고 민준이 얼굴 위에는 베개가 놓여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사인은 흉기로 인한 다발성 자창이었다. 은정씨는 11군데, 민준이에겐 3군데 목 부위를 기습적으로 피습당한 상태였다.
모자를 처음 발견한 건 박씨의 오빠였다. 박씨는 “창문도 닫혀 있었고 커튼도 쳐 있었다”며 “동생은 조카가 있는 쪽으로 누워있었고 왼팔은 빠져 있었다. 조카는 양팔을 뒤로하고 발을 벌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강력한 힘으로 찔렀을 것이라 분석했다. 이들은 기도가 절단된 상태라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채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호 전북대 법의학과 교수는 모자의 상태에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는 저항하지 못했다”고 하는 이 교수는 “칼이 사용될 것이라 생각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 사법대학원 교수는 “복잡하고 좁은 동선을 빠르게 들어와 저항하지 않는 피해자들을 일방적으로 살해하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침착하게 문을 닫아놓고 간 행동은 면식범일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아이의 얼굴을 덮어놨다는 것은 죄책감이나 미안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40여 일 만인 지난해 10월 유력한 용의자로 은정씨의 남편 조씨를 체포했다. 조씨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조씨는 1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하며 전국에서 전시회를 하는 예술가다. 무죄를 주장한 조씨는 현재 치열한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모자가 숨진 당일 조씨는 오후 8시56분에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음날 새벽 1시35분에 집을 떠났다.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아내에게 문자가 와 아들이 만든 것을 가져다 달라고 해 집에 갔다. 밤 9시쯤 도착해 아이와 놀다가 배가 고파 혼자 밥을 먹었고 밤 10시쯤 침대에 누워 다 같이 잤다. 새벽에 잠이 깨 작업장에 가겠다고 말을 한 뒤 집을 나섰다”고 진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와 아들이 살아있었다고 조씨는 주장했다.
이같은 진술에도 조씨의 수상한 행적들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은정씨의 친정 식구들과 지인들은 조씨가 모자의 빈소에 잠시 방문했을 상주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조씨의 부모는 “아들이 갔었는데 못 들어가게 제지하고 막아버렸다. 장례식장에 나도 갔다. 아들을 못 들어오게 하더라”라고 반박했다.
박씨의 친구들은 두 사람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실제 박씨는 사건 발생 두 달 전 조씨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박씨의 변호인은 “(박씨가) 아이를 보러오지 않는 것과 경제적으로 힘든 것을 얘기해서 같이 해결할 방안을 찾았으면 했는데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아 힘들어했다”며 “개선이 어려울 것 같아 이혼을 결심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는 소장을 낸 지 한 달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변호인은 “화해를 했으니 가압류랑 이혼 본안 소송 전부를 취하해달라고 했다. 남편이 와서 잘못했다. 다시 잘해보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다”고 했다.
지인들은 이혼 소송 4개월 전 아내 전화까지 차단했던 조씨가 7월 초 아내를 찾아와 사과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아이를 생각해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생각으로 이혼을 번복했다. 이혼 결정을 번복하자 조씨는 다시 아내에게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경찰 수사 결과 조씨가 결혼 전부터 한 여성과 만남을 가졌고 사건 3개월 전부터는 경마로 돈이 필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 가족들은 상대 여성이 아들을 일방적으로 좋아한 것이며 외도를 했다고 하더라도 살해 동기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반면 이 여성은 조씨가 아내와 화해했던 7월과 8월에도 곧 이혼할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며 자신도 조씨에 의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또 “조씨가 아이에 대한 친자확인을 해야겠다고 했다”며 친아들이 맞는지 의심하는 발언을 여러 번 했다고 전했다.
사건 현장에선 면식범임을 증명할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감식 결과 세면대 배수구, 빨래 바구니 수건에서 피해자들의 혈흔이 발견됐다. 범인은 모자를 살해한 뒤 욕실에서 손을 닦았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건에선 조씨의 DNA가 검출됐다. 다만 조씨의 차량이나 작업장에선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 범행 도구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가족과 경찰은 은정씨의 집에 있던 칼 하나가 사라진 것에 주목했다. 8년 전 박씨의 친정 어머니가 스페인 여행에서 사온 6개짜리 칼 세트다. 제일 작은 과도는 친정집에 있고 현장에선 네 자루만 남아 있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몸에 남은 상처의 형태로 볼 때 매우 예리한 칼날이라고 분석했다.
조씨가 사건 당일 가지고 나온 가방도 의문을 품게 했다. 경찰 관계자는 “재판 중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은정씨 지인들은 조씨가 범행 관련 물건들을 갖고 나와 처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조씨 작업장에 있던 전기 가마가 사용됐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조씨는 모자가 숨진 지 6일 후 한 중고 사이트에 가마를 판다는 글을 올렸다. 조씨에게 가마를 구매한 이모씨(가명)는 “상태도 몇 번 안 땐 것처럼 깨끗하고 상태가 좋은데 꽤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 구매했다”며 “돌아오는 도중에 경찰에게 연락이 와 과학수사대가 샘플을 채취해가 뭔 일이 났구나 했다”고 말했다.
이 가마는 내부 온도가 1280도까지 올라간다. 이씨는 “여기서 뭘 태운다고 해도 티가 날 수 없다. 웬만한 건 다 사라진다. 재는 청소리로 빨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옷과 칼에 인공혈액을 뿌리고 실험을 진행했다.
가마 속에 넣은 피 묻은 옷들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칼은 형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만 칼날 부분은 쉽게 부서졌다. 제작진은 “우리의 실험만으로 결과를 단정하기 어려웠다”며 “직접 물증이 나온 것이 없어 치열한 공방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조씨 가족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현재 1심 재판 중인 조 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제작진은 반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조 씨 변호인이 소속된 로펌에 인터뷰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