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행복했다”…‘중도 하차’ 워런에 쏟아지는 찬사

입력 2020-03-08 05:24 수정 2020-03-08 13:09
첫 사랑과 결혼·이혼, 출산 후 로스쿨 진학 등 ‘스토리’, 여성들에 위안
소셜 미디어 등에 워런 사퇴 안타까워하는 반응 쏟아져
의료보험, 학자금 대출 탕감 등 진보 이슈를 대선 의제로 올려놓아
여성은 남성보다 당선 힘들어…유리천장에 대한 분노도
워런, 바이든과 샌더스 중 누구 지지할지 최대 관심사
워싱턴포스트 “워런, 경선 끝날 때까지 지지선언 안 할 수도”

지난 5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중도 하차를 결정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신화사·뉴시스

미국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지난 5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에서 중도 하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워런 상원의원의 후보 사퇴를 안타까워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보도했다. 가난했던 유년 생활, 첫 사랑과의 결혼과 이혼, 출산 이후 늦깎이 로스쿨 공부 등 질곡을 극복한 워런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 많은 여성들에게 큰 위안이 됐다는 것이다.

경선 중도 포기 이후 최대 관심사는 워런 상원의원이 민주당 경선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중 누구에 대해 지지 선언을 할지 여부다. 워싱턴포스트(WP)는 7일 워런 상원의원이 경선이 끝날 때까지 지지 선언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워런의 후보 사퇴에는 지난 3일 14개주에서 동시에 열렸던 ‘슈퍼 화요일’의 패배가 결정타가 됐다. 이에 따라 민주당 경선 구도는 바이든 전 부통령과 샌더스 상원의원 간 양자 대결로 조기에 압축됐다. 워런의 사퇴로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민주당 유력 경선 후보 중에서 중도 사퇴는 워런 상원의원이 네 번째다. 앞서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을 시작으로,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바이든 지지’를 외치며 줄줄이 사퇴했다.

하지만 워런의 중도 하차에 대한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NYT는 ‘미국은 그녀를 원한다’는 기사에서 “미 전국에 걸쳐 워런 사퇴를 슬퍼하고, 워런에 헌사를 보내는 글들이 소셜 미디어와 NYT 기사 댓글 창에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워런의 하차에 대한 미 국민들의 감정은 크게 세 가지라고 분석했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의료보험·보육 정책과 대학생 학자금 대출 탕감 등 워런이 진보적인 공약을 대선 무대에 의제로 올려놓은 것을 고마워한다고 전했다.

둘째는 ‘유리 천장’에 대한 분노다. 일부 미국인들은 남성보다 여성이 당선될 확률이 낮은 현실이 계속되고 있으며, 유리천장 위에 백악관이 있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는 데 환멸을 느낀다는 것이다. 여성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워런 하차 소식에 “이것은 유리 천장이 아니다”라며 “대리석 천장”이라고 아쉬움을 표출했다.

셋째는 향후 워런의 정치적 선택이다. 워런이 바이든과 샌더스 중 누구를 지지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워런은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이다. 워런은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13살 때부터 친척의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토론대회에서 우승해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갔으나 첫 사랑과 결혼하기 위해 2년 만에 중퇴했다. 딸이 두 살 때 로스쿨에 들어갔고, 변호사가 됐다. 하지만 첫 남편과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를 거쳐 재선 상원의원이 됐다.

매사추세츠의 앤이라고 밝힌 NYT 독자는 “나는 워런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과 소녀들에게 영감을 전달한 데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워런은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면서 “우리나라는 믿을 수 없는 기회를 잃었다”고 애석해했다.

샌디에이고에 사는 EB라는 여성은 “대학생 학자금 대출 탕감이든, 의료보험이든 그녀의 말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옳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녀는 아이 둘을 내 힘으로 키우는 내 삶을 이해했다”면서 “나는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진심으로 감사했다”고 전했다.

이제 관심은 워런이 누구를 지지할지 여부다. WP는 바이든과 샌더스를 사이에 두고 워런이 정치 경력을 건 선택을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워런이 바이든을 지지하는 것은 민주당 주류세력과 제휴하는 것이고, 샌더스를 선택하는 것은 아웃사이더들과 힘을 합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WP는 워런이 샌더스를 지지할 경우 그녀가 걸어왔던 진보적 이념성향과 맞고, 향후 좌파 진영에서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샌더스가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낮은 데다 워런이 일부 샌더스 지지자들의 온라인 독설에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다고 전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놓고 “샌더스와 워런 사이에 많은 불화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설도 변수다.

워런이 바이든을 지지할 경우 그녀가 추진했던 어젠다들을 민주당 지도부가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 바이든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차기 정부에서 역할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의료보험과 무역 등에서 워런과 바이든의 정치적 차이가 너무 큰 것이 부담이다.

WP는 워런의 다른 선택은 민주당 경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출됐을 때 대선 승리를 위한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한다는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