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강아지 마음을 얻기까지… 유기동물센터 사양관리사의 하루

입력 2020-03-07 16:05 수정 2020-03-0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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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경기도 용인의 한 유기동물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현재 200마리 정도의 유기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다. 차인선PD

지난달 11일 찾은 경기도 용인의 한 유기동물센터에서 믹스견 ‘북이’가 밥을 먹자마자 야외 견사 앞에 느러누웠다. 이곳 사양관리사 김영준(31)씨는 “처음 센터에 온 날부터 저렇게 누워있길래 어디 아픈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북이는 입소 첫 날부터 제집처럼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었다.

처음 유기동물센터에 온 강아지나 고양이들의 적응력은 천차만별이다. 북이처럼 빠르게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움츠리고 사람들을 경계하는 동물도 있다. 영준씨는 “경계심이 많은 동물도 매일 무심한 듯 챙겨주면 마음을 연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경기도 용인의 한 유기동물센터에서 사양관리사 김영준(31)씨가 유기동물들에게 사료를 주고 있다. 차인선PD

오전 9시. 영준씨가 출근하자 실내 견사에 묶여 있던 강아지들이 짖기 시작했다. 영준씨는 가장 먼저 동물들의 상태를 살폈다. 치료가 필요한 동물은 센터 소속 수의사에게 맡긴다. 유기동물센터엔 동물들이 잘 관리되고 훈련받은 상태로 새 보호자를 만날 수 있도록 수의사도 함께 근무하고 있다. 사양관리사는 유기동물센터에서 주인에게 버려진 개나 고양이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 영준씨는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다 2년쯤 전에 사양관리사가 됐다. 이곳에 생활하는 동물들을 산책시키고 견사를 청소하는 것도 영준씨의 몫이다. 영준씨가 야외 견사를 청소하러 들어가자 강아지들이 영준씨에게 다가와 졸졸 따라다녔다. 한 마리씩 사료를 나눠주는데 한 강아지가 먹지 않고 딴청을 부렸다. 영준씨는 “아껴놨다가 이따 먹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지몽’이는 영준씨를 보자 사료 먹는 걸 멈추고 눈치를 봤다. 영준씨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지몽이도 언젠가 마음을 열어주겠지….”

지난달 11일 경기도 용인의 한 유기동물센터에서 수의사와 사양관리사들이 유기견을 치료하고 있다. 차인선PD

영준씨가 근무하는 센터엔 유기동물 200마리 정도가 있다. 총 6명의 사양관리사가 대형견, 소형견, 고양이 등으로 나눠 각각 30~40마리씩 맡는다. 영준씨는 “당직근무를 하는 공휴일엔 한 사람당 100마리씩 맡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양관리사는 학교 선생님과 비슷하다. 다른 강아지와 잘 어울리는지, 성격은 어떤지 등 한 마리 한 마리를 다 신경 써서 살펴봐야한다. 그러나 관리하는 개체가 워낙 많다보니 한 마리씩 꼼꼼히 신경 쓰고 싶어도 가끔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며 아쉬워했다. 견사 앞엔 ‘헨젤’ ‘점보’ 같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처음엔 입소한 유기동물들을 숫자로 불렀었는데 지금은 전부 이름을 지어준다. 영준씨는 “유기동물센터에서 일하면서 유기동물들의 마음을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기동물센터엔 주인이 갑자기 사망하거나 버려지는 등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다 신고를 받고 들어오는 동물들이 많다. ‘우기’도 그런 케이스다. 냄새가 많이 났고 유난히 말라 있었다. 영준씨는 “처음 센터에 올 땐 굉장히 말랐었는데 그나마 여기 와서 살이 많이 오른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11일 경기도 용인의 한 유기동물센터에서 사양관리사 김영준(31)씨가 유기견 '보름이'와 산책을 하고 있다. 차인선PD

이곳에서는 한 달에 10마리 정도가 새 주인을 찾아 입양 보내진다. ‘포인핸드’라는 유기동물 입양 어플을 통해 입양자를 찾거나, 센터를 방문한 보호자와 상담을 진행한 뒤 적절한 동물을 매칭시켜준다. 해외로 입양 가는 경우도 있다. 이곳은 안락사율이 적은 편이지만 불가피하게 안락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영준씨는 퇴근 직전에 며칠 뒤 입양 가게 될 보름이와 센터 주변에서 마지막 산책을 했다. 보름이가 뒷발로 서며 영준씨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영준씨는 “센터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줄 보호자에게 가는 게 더 좋은 일이기 때문에 서운하지만 기쁘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아직 유기동물센터 운영이나 사양관리사 처우에 체계가 잘 잡히지 않아서 힘들지만 관리하던 아이들이 좋은 보호자를 만나 입양 갈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