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뻥 뚫린 코로나19 매뉴얼… 그들의 최후 선택은 ‘동반격리’

입력 2020-03-07 04:00 수정 2020-03-07 04:00

재난은 늘 약자에겐 더 가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한민국 모두가 고통 받고 있지만 약자에겐 이 문제는 생존의 위협으로까지 다가온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해 도시 기능이 흔들리고 사회 시스템이 마비된 대구의 취약계층은 더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공포감이 너무 크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게 그들의 호소다.

정부의 감염병 매뉴얼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인색했다. 매번 국가적 재난이 터진 뒤 시스템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늦게 나오지만 곧 잊혀 졌고, 이번에도 약자는 그저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국민일보는 중증장애인, 한부모가정, 비혼가정, 조손가정, 홀몸노인들이 지난 한 달 간 살아 온 이야기를 연이어 보도한다.

②매뉴얼 빈틈을 몸으로 메웠다.
감염병이 급속히 퍼지면서 대구의 복지 시스템은 사실상 모두 ‘셧다운’됐다. 시스템 안에서 도움을 받던 이들은 그대로 방치됐다.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지침은 허점투성이였다. 그 시스템 너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활동가들은 지침을 어겨야 했다.

돌봄을 위해 지침 어겨야 하는 요양사
대구 수성구의 요양보호사 오모씨는 경증치매를 앓고 있는 A할머니 댁에 들어가기 전 마스크 두 개를 겹쳐서 끼고 옷에 소독제를 뿌렸다. 장갑을 끼고 부엌에 들어가 밑반찬을 해드리고 방청소도 했다. 매일 해오던 일이지만 어느 날부터는 정부 지침을 어긴 행동이 됐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중 요양보호사가 나오자 지난달 24일 대면접촉 금지 지침을 내렸다.


오씨도 처음에는 할머니의 상태만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집 앞까지 갔을 때 그냥 지나쳐 나올 수가 없었다. 경증치매환자라도 오랜 시간 돌봄이 없으면 집안일을 할 수 없고, 음식도 만들지 못한다는 걸 수년 째 경험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경증이라는 이유로 노인보호시설이나 긴급돌봄 이용에서 중증환자에 우선순위가 밀려 있었다.

오씨는 “경증이라도 밑반찬이나 밥 준비는 해드려야 식사가 가능하다”며 “아무래도 집이 더러워지고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에 놓이게 되니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코로나19 사태를 견뎌내고 있었지만 오씨는 대면접촉을 하지 말라는 보건당국의 지침을 어긴 셈이다.

수성구의 또 다른 노인재가복지센터 관계자도 “최대한 안부전화로 대체하라고 해서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드리고 있는데 ‘거동이 힘들다’ ‘식사 준비가 힘들다’ 도와달라고 어르신들이 전화를 하면 우리는 갈 수 밖에 없다. 어르신들 생활이 더 중요하니까”라고 말했다.

지침은 복용약이나 음식과 같은 전달품이 있을 때도 대면접촉을 금지했다. 문 앞에 두고 가는 형식으로 지원하라는 게 방침이다. 하지만 상당수 사회복지사들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노인복지센터 관계자는 “입구에 약을 놓고 갈 때도 어르신 상태는 얼른 확인을 해보고 가야한다. 혹시 생겼을지 모를 사고를 우리가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숨어있는 복지 수요 발굴도 정지됐다. 새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노인들은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무작정 대기상태다. B노인복지센터 관계자는 “당장 신규 요양서비스 의뢰가 들어온 어르신들은 직접 건강 상태나 거주 환경 등을 확인한 뒤 등록을 해야 하는데 전화만으로는 상담 한계가 있어서 정기적인 도움을 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식 등록은 되어있지 않더라도 급한 대로 복지센터 관계자가 긴급구호식품을 집 앞에 전달해두고 오는 방식으로 돕고 있는 상태다.

도시 기능 마비로 민간 복지 서비스도 함께 무너졌다. 복지센터들은 일손이 없어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 집에 전달할 음식 만들 여력이 없다. 대구 지역 사회복지사인 박모씨는 “민간 센터들은 인건비 부담이 커서 자원봉사 인력에 의존을 했었는데 이런 상황이 닥치니까 당장 사람이 부족해서 제대로 지원을 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당장 급한 대로 즉석식품을 구매해서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위해 동거격리 선택한 활동가
지난달 말부터 자가격리가 필요한 장애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그 상황을 대비한 정부 지침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장애인단체의 요구에 정부는 2월 말 지침을 내놨는데, 장애인의 특수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정부는 장애인 자가격리자가 발생하면 원칙적으로 대구 시내에 마련된 격리시설로 이송해 보호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대구 내에는 격리시설이 운영되지 않았었다. 대구교육낙동강수련원을 취약계층 격리시설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검토했는데, 그마저도 대상자는 주소지가 불특정한 사람들로 한정됐다. 지역 내 주소지를 갖고 생활하는 장애인은 들어갈 수가 없었던 셈이다.

정부는 격리시설에 들어갈 수 없으면 자택서 격리를 한다는 두 번째 지침도 내놨다. 하지만 홀로 생활할 수 없는 장애인들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내용은 또 빠져 있었다. 결국 장애인 단체 소속된 비장애인 직원들이 나서서 장애인과 함께 ‘동반격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정지원(32) 대구장애인지역공동체 활동가가 그런 경우다. 그는 지난달 29일부터 발달장애인 최영호(53·가명)와 함께 같은 집에서 격리생활을 하고 있다. 거실에 방 2개, 화장실 1개가 딸린 자립지원주택에서다. 최씨와 함께 살던 다른 장애인 박규진(가명)씨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그 전에 그와 접촉한 정 활동가와 최씨 모두 격리 대상자가 됐다. 각자 다른 방에서 생활을 하면서 2시간 간격으로 식사나 약 등을 정 활동가가 챙긴다. 실내 소독과 환기, 잡다한 집안일도 그의 몫이다. 그는 “무연고자인 최씨는 자가격리 생활이 불가능한 장애인인데, 이분을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보니 그냥 함께 격리생활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갑작스런 격리생활의 이유를 아직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같이 살던 동료 장애인이 ‘코로나’라는 독한 감기에 걸렸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종종 “왜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느냐” “너무 답답하다”고 정 활동가에게 토로한다고 한다. 정 활동가는 그런 최씨를 매일 어르고 달래 진정시키고 있다.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