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했던 ‘콧등 밴드’ 주인공, “나만 그런게 아닌데…” [인터뷰]

입력 2020-03-06 04:30 수정 2020-03-06 04:30
국방부 트위터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얼어 붙인 마음을 녹이기에 ‘이 사진’ 한 장은 충분했다. 콧등에 여러겹 덧댄 일회용 반창고와 그 위를 다시 덮은 마스크. 보는 사람마저 따갑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정작 그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사진의 주인공인 국군의무사령부 대구 의료지원단 김혜주 대위는 지난달 23일부터 대구 동산의료원에 투입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병동을 누비고 있다. 마스크와 맞닿은 부분, 헐어버린 상처를 임시방편으로 가린 그의 모습은 지난 3일 국방부 트위터에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김 대위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곳 모든 의료진이 겪는 일”이라며 사진 속에 담긴 현장 사연들을 전했다.

얼굴 곳곳엔 반창고… 물 한 잔이라도 이들 손을 거친다

네티즌들을 뭉클하게 한 ‘콧등 반창고’의 정체가 궁금했다. 김 대위는 “근무에 투입될 때 N95형 의료용 마스크를 쓰는데, 콧등과 양쪽 볼 피부에 계속 마찰이 생긴다”며 “그러다 보니 콧등이 쓸리고 벗겨지는 증상이 계속 생겨 반창고를 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용 고글과 방호복 후드 부분이 이마를 누르는 경우도 있어서 통증은 늘 있다”며 “요즘에는 이마에도 일회용 반창고나 거즈를 붙이고 근무하시는 의료진분들이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4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진료활동을 마친 한 의료진의 얼굴에 오랜 시간 고글 착용으로 생긴 상처에 반창고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하루에도 수백명씩 등장하는 확진자, 얼굴 곳곳에 반창고를 덧댄 채 일하는 의료진들. 코로나19 병동의 하루는 어떻게 돌아갈까. ‘응급실처럼 급박하고 치열하게 돌아가느냐’는 막연한 질문에 김 대위는 “일반적인 병원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맞다”고 말했다.

그가 있는 격리병동 의료진들은 환자의 식사를 챙겨주는 일부터 경구약, 주사 처치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환자가 화장실에 가거나 물 한 모금 먹는 일을 돕는 것도 모두 이들의 몫이다. 김 대위는 “병동에 계신 모든 환자의 중증도가 높은 게 아니다. 긴박함의 정도를 말하자면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며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의료진들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걸리면 동료도 걸린단 생각, 늘 한다”

코로나19 사태 최전방에 있는 모든 의료진은 늘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 두렵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김 대위는 “그럴수록 방호복과 마스크를 더 철저하게 점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근 병원에서도 의료진 감염 소식이 전해진다. 우리에게도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며 “제가 걸리면 옆에 동료도 걸릴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조심스럽다. 방호복을 입은 뒤 서로 점검해주고 구멍 난 곳은 없는지, 코와 입은 잘 가려졌는지를 매번 유심히 본다”고 했다.

국방부 트위터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보니 절실한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김 대위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 방호복 같은 예방품의 보충을 꼽았다. 물량에 비해 소모가 많고 꾸준하다는 게 이유다. 그에 따르면 병동 내 의료진들에게도 주어지는 마스크 수량은 생각보다 적다. 상시 비치가 아닌 ‘1일 1개 제공’ 형식이다. 하루에 소모되는 의료진 방호복도 500벌이나 된다. 김 대위는 “환자들이 입는 입원복의 경우에도 한 번 입고 폐기를 해야 한다”며 “깨끗한 병원복이 더 많으면 환자들이 더 쾌적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의료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서도 “최소 몇 주 단위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전국적인 확산세를 보이면서 지역거점 병원들이 등장했고, 대구·경북 지역에 파견됐던 인력이 다시 복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 대위는 “인력이 고정된 게 아니고 하루하루 유동적이기 때문에 근무표가 항상 바뀌는 불편함이 있다”고 토로했다.

“화장실 가기도 힘들지만…” 지칠 수 없는 이유

‘밥은 잘 먹고 잠은 잘 자는지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는 말을 꺼내자 김 대위는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임무수행을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는 씩씩한 대답을 내놨다. 그에 따르면 마스크와 방호복 등으로 무장한 의료진이 한번 병동에 들어가 머무르는 시간은 최소 2시간이다. 그동안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되지만 바쁜 업무로 제때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기조차 힘들다. 김 대위는 “생리현상을 조절하기 위해서 식사를 잘 안 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국방부 트위터 영상 캡처

그럼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각계각층에서 전해오는 온정 덕분이다. 최근 기업이나 공인들의 기부 소식이 이어지고 있고, 여기에 지역 시민들의 손길까지 더해졌다. 김 대위는 “(한 시민분이) 저희 군 의료진에게 직접 담근 김치를 보내주시기도 하고, 자비로 산 과일을 숙소에 놔두고 가시기도 한다”며 “어제도 익명의 대구 시민분들이 의료진에게 토스트를 제공해주시고 가셨다”며 웃었다. 그는 “덕분에 잘 먹고 힘내서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