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한 정장 차림의 이청용(32)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증후군(코로나19) 여파에도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 ‘돌아온 스타’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렸다. 울산 현대로부터 전달 받은 푸른 유니폼을 든 그는 자신의 등번호 72번을 가리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급’ 선수인 이청용이 11년간의 유럽 도전을 마감하고 프로축구 K리그로 복귀한 순간이었다.
이청용이 5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공식 입단 기자회견을 갖고 11년 만에 K리그로 돌아온 소감을 밝혔다. 그는 “11년 전보다 지금의 이청용은 한 경기 한 경기가 더 간절하고 소중해졌다”며 “울산과 함께 K리그에서 못 이룬 (리그 우승의) 꿈을 이뤄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청용은 2009년 21세의 나이에 K리그 FC 서울을 떠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 원더러스에서 유럽 도전을 시작했다. 볼턴의 ‘에이스’로서 세계적인 선수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기도 했고, 2011년엔 정강이뼈 골절이란 끔찍한 부상을 입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유럽 생활을 거쳤다. 이후 크리스탈 팰리스를 거쳐 최근엔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VfL 보훔에서 뛰었다. 이청용은 축구 선수 중에서도 선택받은 선수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하며 20대를 보냈다.
이청용은 “(5골 8도움으로 활약한) 볼턴에서의 첫 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료 선수들과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잘 지내 제겐 특별한 팀”이라며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돌아봤을 때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한 것 같아 굉장히 행복했다”고 상기했다. 유럽 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엔 “(뒷바라지 하느라) 가장 고생한 제 아내”라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이청용이 약 한달 반 전 복귀를 결심한 이유는 팬들을 위해서다. 그는 “10년 전 볼턴이나 월드컵 활약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아직 최고 수준에서 축구할 수 있을 때 매주 제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며 “기대치가 부담도 되지만 책임감 있게 준비하고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청용이 올 시즌 입을 유니폼은 친정팀 서울이 아닌 울산으로 결정됐다. 주전 경쟁으로 힘겹던 팰리스 시절부터 이청용에 러브콜을 보냈던 울산에 자연스레 고마움이 생겨 결국 울산의 손을 잡았다고 한다. 그는 “서울은 제가 가장 애정하는 팀이고 축구선수로서 최고의 경험을 만들어준 곳”이라면서도 “울산 선수단 모두가 너무 기쁘게 반겨줘서 감사하고 경기력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K리그 팬들은 ‘쌍용’의 모습을 함께 볼 수도 있었다. 서울행을 타진했던 기성용(31·마요르카)의 복귀가 무산돼 결국 이청용만 돌아왔다. 서울의 미적지근한 협상 태도에 비판도 많았다. 이에 대해 이청용은 “저도 복귀할 땐 서울만 떠올렸을 정도지만 선수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다”며 “가장 아쉽고 상처받은 사람은 성용이 본인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한국 축구의 특별한 선수인 성용이와 같이 뛸 기회가 꼭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기성용과는 달리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지 않은 이청용은 태극마크를 다는 것도 꿈꾼다. 그는 “공격 포인트 기회가 많을 텐데 이를 잘 살려서 울산에 도움을 주는 게 가장 큰 역할일 것”이라면서도 “대표팀 기회가 주어진다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돌아온 청용’은 밝은 얼굴로 팬들에 마지막 말도 남겼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하루 빨리 경기장에서 만나 기대만큼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