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차별’에 中 호텔 위생도 엉망…“아이들 천식·비염 고통”

입력 2020-03-05 17:25 수정 2020-03-05 18:55
광둥성 선전에 강제 격리된 대구경북 출신 교민들이 2일 밤 늦게 새로운 호텔로 옮기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교민제공

“수건은 매번 소독하기 힘들다면서 1장씩 주고 각자 빨아서 쓰라고 합니다. 먼지 쌓인 카펫 청소도 해주지 않아 아이들이 알레르기성 비염과 천식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중국 광둥성 선전으로 입국했다가 대구·경북 주민등록번호라는 이유로 호텔에 강제 격리된 교민들은 열악한 환경에 분통을 터트렸다.

실제 거주하지도 않고 출신지만 대구인데 부당하게 지정 격리되는 차별을 당하고 있는 데다 호텔의 식사, 위생, 처우가 너무 엉망이라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28일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입국한 한국인 승객 195명 가운데 24명이 주민등록번호 소재지가 대구·경북이거나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호텔에 강제 격리됐다. 이들 가운데 16명이 청소년(3세, 7세 포함)이다.

광둥성 정부가 3월 1일 이전 입국한 무증상자는 자가 격리 전환한다고 3일 발표했지만, 대구·경북 출신들만 또 제외됐다고 한다. 4~5일 위챗 단체 대화방 등을 통해 호텔에 격리된 교민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이 처음 격리된 호텔은 객실 바닥 구석이나 책상 옆에 먼지가 쌓여있고, 세면대 아래 배관에서 물이 새는 곳도 있었다. 영상 30도에 에어컨도 없고, 소형 선풍기만 있어 아이들이 거의 탈진 상태였다.

시설이 너무 열악하니 호텔이라도 바꿔 달라고 했으나 묵살하더니 지난 2일 오전 갑자기 다른 층으로 옮기라고 해 짐을 싸서 이동했다.

그런데 오후 3시 반쯤 다른 호텔로 옮긴다는 통보가 왔다. 짐을 싸고 기다렸는데 밤 10시가 넘어서 버스가 출발했다.

다른 호텔에 자정쯤 도착했는데 중국 측에서 “격리 기간을 4일부터 시작해 14일을 다시 산정하겠다”고 해서 거세게 항의해 막았다. 실랑이 끝에 2시를 넘겨 가족들이 입실을 마쳤다.

한 교민은 “온몸이 아프고 심장이 벌렁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당시 분노를 전했다.
중국 선전에 격리된 교민들의 숙소. 호텔측이 수건을 바꿔주지 않아 수건까지 빨아서 널어놓고 있다. 교민제공

격리된 뒤로는 객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안에서만 있어야 했다. CCTV로 감시하고 있어 복도를 돌아다니다 적발되면 그날부터 다시 14일 격리를 시작해야 한다.

침구 교체는 물론 객실 바닥의 카펫 청소도 해주지 않아 테이프 클리너(찍찍이)로 머리카락이나 부스러기만 제거하고 있다. 교민들은 아이들의 건강을 해칠까 걱정을 하고 있다.

“찍찍이로 카펫 청소를 하느라 벌써 두 통을 썼는데, 먼지가 많아 작은 아이가 기침을 해서 걱정입니다.”

“둘째 아이가 먼지 알레르기로 계속 눈을 비비고 있습니다.”

“둘째가 천식이 있어서 힘들어한다. 객실 카펫 청소를 안 해주니 언제 갑자기 증상이 나타날지 조마조마합니다.”

교민들은 속옷과 수건을 빨아 쓰고 있으나 환기가 잘 안되고 옷이 잘 마르지 않아 냄새에도 시달리고 있다. 지급되는 수건은 손타올은 포함해 1인당 크기 별로 총 3장 뿐이다.

현지 한인회가 호텔 측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답이 없자 4일 오후 다른 용도로 사 놓은 한인회 수건을 긴급 제공하기도 했다.
청소기가 없어 객실 카펫을 테이프 크리너(찍찍이)로 청소한 모습. 교민제공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도 간단한 중국식이어서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아 외부에서 반찬을 주문하거나 모 기업체에서 하루 1개 제공하는 도시락을 먹고 있다.

호텔 인터넷 속도가 느리고 자꾸 끊겨 자녀들이 온라인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교민 A씨는 “학생들은 매일 온라인 수업이 매일 있고, 동영상을 찍어서 올려야 하는 숙제나 요리수업 숙제도 있는데, 어린아이가 좁은 방에서 수시로 끊기는 와이파이와 씨름하며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격리된 교민들은 중국 정부에 차별을 당하는데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한국 정부에 분노를 쏟아냈다.

교민 B씨는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한 적도 없는데 현지 주민번호라는 이유로 격리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며 “백방으로 뛰고 있는 한인회 외에는 우리를 도와주는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교민 C씨는 “4일까지 6일간 격리 중에 교민들이 광저우 총영사관 영사를 만나 대화한 것은 단 한번 뿐”이라며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선전에 격리된 교민들에게 호텔측이 제공한 식사.교민제공

선전 뿐 아니라 광저우와 둥관 등 광둥성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한다.

둥관의 호텔에 격리된 한 교민은 “새벽에 아이들 건강과 학업 걱정에 잠이 안 온다”며 한인 위챗방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창문도 활짝 안 열리는데, 그나마 모기 때문에 열지도 못해 밀폐된 공간에서 덥고 가슴이 답답하다”며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 바람에 카페트에서 날리는 먼지로 아이들이 비염과 재채기, 두통, 코막힘을 호소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둘째 고3 수험생은 대학 입시를 두 달 앞두고 있는데, 학업에 몰두해야 할 때 인터넷 수업과 과제도 힘들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건강하게 있다가 돌아가야 할 텐데, 벌써 정신적,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광저우에 거주하는 한인회 관계자는 “교민들이 격리된 호텔 대부분이 열악해 항의하고 있고, 한인회에서도 별도로 수소문해 나은 숙소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남 광저우 부총영사는 “광저우도 입국자들의 거주지에 따라 여러 호텔로 분산시켜 격리를 하고 있다”며 “광둥성 정부가 예산 한도가 있는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불분명한데 격리된 호텔의 수준이 지역 마다 다르고, 3성급 호텔 수준이어서 교민들이 열악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둥성은 지난 3월 2일 이후 입국자는 2주 지정 격리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4일 현재 광저우 450명, 선전 88명 등 538명이 호텔 등에 지정 격리돼 있다. 3월 1일 이전 입국자들이 자가 격리로 전환되지만, 추가 입국하는 한국인들도 많아 격리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