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로나 걸릴라” 국내 입항하고도 ‘선박 격리’된 외항 선원들

입력 2020-03-05 17:0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격리 관찰’ 위해 무인도 도착하는 인도네시아 선원들. 사진과 기사는 무관. 연합뉴스

외항 선원 김모씨는 지난달 말 경남의 한 조선소에 입항한 뒤 배에서 한 발짝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김씨의 배는 두 달여 전 중국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데, 회사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이유로 선원들의 하선을 금지시켰다. 40일 넘게 걸리는 수리 작업 동안 20명 남짓한 선원들은 모두 배에서 내릴 수 없다.

김씨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오랜만에 모국에 돌아왔는데 땅을 밟지도 못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발열 등 의심 증상이 없어도 상륙을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소연했다.

중국 방문 이력이 있는 선원들이 국내에 돌아오고도 선박에서 격리돼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요 선사들은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돼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선원들은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없어도 무조건 배에서만 지내게 한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전국해운노동조합협의회에 따르면 중국에서 들어온 선박의 선원들은 원칙적으로 상륙하지 못한다. 선사 측에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만든 수칙으로 정부 차원의 제재는 아니다. 일부 선사의 경우 검역을 받고 이상이 없으면 일시적인 외출을 허용하기도 하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외항선 항해사 등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선사 측의 하선 금지 관련 불만 글이 여럿 올라와 있다. 선원들은 “한국 왔는데 상륙 금지 조치로 배 안에 갇혔다” “선원이 죄인인가”라고 적었다. 현직 선장 이모(50대)씨도 “가족도 만나지 못한 채 배 안에서 오래 격리돼 있는 것은 철창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선박 격리를 지시한 선주들은 안정적인 운항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상익 협의회 정책개발팀장은 “국내에서 코로나19가 확산돼 선원의 안전과 물류 기능을 담보하기 위해서 내린 조치”라며 “한국발 선박에서 코로나19가 전파되기라도 하면 외교·경제적 차원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도 “선박은 매우 작은 공간이기에 선원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모두가 위험하다.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단절시켜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선박 운항의 특수함을 고려했을 때 선사들이 자율적으로 상륙을 자제시키는 것은 일정 부분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아직까지 국내 항만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사례는 없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