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직장 내 괴롭힘’ 여전… 인권위 실태조사 발표

입력 2020-03-05 15:09
직장내괴롭힘여전. 연합뉴스

체육계에 종사하는 30대 여성 A씨는 2년 넘게 직장에서 협박과 괴롭힘, 폭력을 겪은 뒤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치료가 필요해 병가를 냈지만 회사는 눈치를 주고 오히려 인사고과에서 최하점을 줬다. 그는 “내부고발자로 찍혔다”면서 “올해도 고용이 계속될지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체육계 종사자 3명 중 1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 산하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체육 관련 단체·기관 종사자 성폭력 등 실태조사’를 5일 발표했다. 조사단이 체육계 관련 종사자 1300여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34.1%인 470명이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유형별로는 회식 참여 강요(34%)가 가장 많고 뒤이어 뒷담화 및 소문(16.2%), 욕설(13.4%) 순이었다. 음주나 흡연 강요를 받은 적이 있다(13.1%)는 응답도 있었다.

성희롱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응답자도 10명 중 1명 꼴인 것으로 조사됐다. 성별로는 여성(21.1%)이 남성(2.9%)에 비해 10배 가까이 높았고, 고용형태로는 비정규직(10.7%)이 정규직(9.4%)보다 더 많이 성폭력을 경험했다.

피해 유형별로는 성적인 농담(6.2%)이 가장 많았고 이어 술시중 강요(4.5%), 몸을 더듬는 성추행(2.5%) 순이었다. 이밖에도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불법촬영을 하고 심지어는 강간을 한 사례도 조사됐다. 이중 절대 다수인 90%는 피해를 입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 조사단은 결과 보고서에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에 여성 비율이 일정 수준이 돼야 하지만 체육계에서 여성이 정규직인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가 개선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30대 비정규직 여성 B씨는 조사단과의 심층 인터뷰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것이 스스로 불편하게 느껴지다보니 문제제기를 안 하게 된다”면서 “육아를 하는 맞벌이 가정이다보니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고 털어놨다.

조사단은 체육계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권위적인 문화와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높은 강도의 괴롭힘 가해자가 주로 상근 및 비상근 임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임원 선정 과정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검증하는 등 개선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을 통해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피해 발생 시 체계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정책간담회를 실시하고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권고 내용을 결정할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