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명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 혼란을 견디다 못해 고국을 탈출하는 상황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모든 여성은 6명씩 자녀를 낳아라. 국익을 위해”라고 주장해 빈축을 사고 있다.
베네수엘라 일간 엘나시오날은 4일(현지시간) 마두로 대통령이 전날 정부의 임신·출산 관련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임신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주장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여섯 번째 아이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한 임신부를 격려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해당 장면이 국영TV를 통해 방송됐고 이후 소셜미디어로 퍼지면서 거센 분노를 촉발했다. 마두로의 극단적 출산 장려책이 수많은 아동이 굶주리는 베네수엘라의 현실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야당 정치인인 마누엘라 볼리바르는 트위터를 통해 “병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백신은 부족하다”며 “영양이 부족한 산모들은 모유 수유도 힘들고 분유는 비싸서 살 수조차 없다.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실제 베네수엘라의 아동 실태는 처참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0~1세 영아 1만1466명이 사망했다. 극심한 경제난이 이어지면서 의료체계가 마비된 탓이다. 의약품이나 의료기구는 물론이고 병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물과 전기도 부족하다. 이마저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7년부터 영아 사망 수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유엔세계식량계획은 베네수엘라 인구의 3분의 1이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아동의 13%가 영양실조 상태다. 생활고로 약 450만명의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고국을 등지면서 100만명의 아이들이 홀로 남겨진 것으로 추산된다. BBC는 한 자선단체의 2018년 조사를 인용해 경제난 속에 공공기관 앞이나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의 수도 70% 늘어났다고 전했다.
여성 인권 단체들도 분개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본부를 둔 여성단체 아베사는 “마두로의 발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여성들은 자궁 이상의 존재이며, 훨씬 더 많은 권리를 지닌 시민”이라고 비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