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 중국인 관광해설 후 자발적 격리한 1129번 확진자의 일지

입력 2020-03-05 08:51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보건당국에 동선 등 행적에 관련해 거짓 진술을 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대중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반대로 의심 증상이 나타난 직후 동선은 물론 증세 등을 꼼꼼히 기록한 50대 확진자가 네티즌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는 확진 판정은 물론 검사를 받기 전부터 자신의 상황과 증상을 고려해 스스로 자가격리를 시작하고 일지를 기록했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인천에 사는 1129번 확진자 A(58)씨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느끼기 시작하자 일부러 일지를 작성해 자신의 행동 경로를 모두 기록했다. ‘다른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기록을 남깁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A씨의 일지엔 이동 장소와 방법 등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다.

특히 A씨는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고 꽤 먼 거리를 걸어 다녔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됐다. 일지에 따르면 A씨는 1월23일~26일 서울 경복궁 등 관광지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문화 해설을 마친 뒤 인후통을 느껴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했다.

불안감을 느낀 그는 31일부터 집에 머물며 증상과 치료 상황을 무려 일지로 꼼꼼히 기록했다. 일지는 무려 39쪽이나 됐다. 홀로 모시고 사는 83세 노모의 건강이 우려돼 집에서도 A씨는 위생장갑과 마스크를 낀 채 생활했고 식기도 무조건 소독했다. 일지엔 오후 9시50분 오른쪽 36.1도, 9시51분 36.07도, 목 뒤 어깨에서 등목으로 불편해진다 등의 신체 증상이 상세히 기록됐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 대중교통을 이용한 내역도 적었다. A씨는 연합뉴스에 “평소 남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흉통으로 잠을 못 이룰 만큼 아픈 날도 있어 더욱 조심했다”며 “1339와 보건소에 연락해 검사 권유를 받고 움직였고 3~40분 거리 병원에 갈 때는 인적이 드문 철길을 따라 갔다”고 말했다.

실제 A씨는 인천의료원 권유로 길병원 선별진료소로 이동했던 지난달 8일에만 택시를 탄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선별진료소에서는 뚜렷한 의심 증상이 없어 코로나19 검체 검사를 해주지 않았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지난달 13일 동네 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흉통이 계속돼 23일 같은 병원에서 2차 검사를 한 끝에 25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A씨는 “격리 과정과 갈수록 심해지는 증상들을 겪으면서 경험한 감정도 함께 적혀 있어 부끄럽다”고도 했다.

A씨는 확진 판정 후 1주일 만에 회복해 인하대병원에서 퇴원을 앞두고 있다. 인천시는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이 A씨처럼만 행동하면 주변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기로 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