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성동구 마장동주민센터 앞, 백발이 성성한 최모(73) 할머니는 체크무늬 장바구니가 달린 유모차를 지팡이 삼아 건물 앞에 줄을 섰다. 최 할머니는 지난 주말 마스크를 사러 우체국과 약국을 들렀지만 한 장도 구하지 못했다. 맥이 빠져 귀가하던 중 이웃 할머니로부터 주민센터가 마스크를 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 할머니는 “마스크 구하기가 너무 어려운데 여기는 아침에 오면 항상 주니까 좋다”며 마스크를 받아들고 귀가했다.
이날 성동구 행당2동과 마장동 주민센터는 마스크를 받기 위해 방문한 주민들로 붐볐다. 업무 시작 한 시간여 전부터 이미 주민 십수명이 주민센터 앞에 늘어서 있었다. 대기줄은 오전 10시쯤 100m 넘게 이어졌다.
성동구는 17곳의 주민센터에서 하루 약 1만개의 마스크를 구민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지금의 방식으로 나눠주기 시작한 건 지난달 25일부터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취약계층(저소득·임산부) 이외 일반 주민들에 마스크를 나눠준다고 알려진 사례는 성동구가 유일하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서 마스크 공적판매처로 주민센터를 지정하라는 여론이 일고 있는 걸 고려하면 일종의 시범 사례로 볼 수 있다.
주민센터를 방문한 이들은 주민등록증이나 등본 등으로 구민임을 확인한 뒤 체온을 재고 KF94 마스크를 하루 1매씩 지급 받는다. 직원이 주민의 이름을 시스템에 입력하면 정보가 주민센터끼리 자동으로 공유돼 중복 수령을 막는다.
이날 만난 성동구민들 다수는 노년층이거나 아이와 함께 온 엄마였다. 각각 아홉 살, 다섯 살 난 자녀 둘을 데리고 행당2동주민센터에서 줄을 선 박모(38)씨는 “개학이 연기돼 연차를 쓰고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다”며 “마스크 받을 겸 산책도 할 겸 나왔다”며 마스크를 받은 뒤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백발의 시아버지 손을 잡고 마장동주민센터를 찾은 B씨(53)도 이날 마스크를 받았다. 지난 주말 이마트 왕십리점에 방문해 1시간 동안 줄을 섰지만 선착순 지급이 마감돼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했다. B씨는 “집에서 5분 거리인 주민센터에서 마스크를 주니 멀리 안 나가도 돼 좋다”며 “한 장은 무조건 받을 수 있으니 15분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며 웃었다.
이경자(65)씨는 지팡이 없이는 거동이 어려운 이웃 C씨(87)를 부축해 함께 행당2동주민센터를 찾았다. 이씨와 B씨가 마스크를 받은 오전 11시20분, 주민센터 직원이 센터 밖에 나와 급하게 줄 서 있는 인원을 세기 시작했다. 이날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받은 구민은 오전 11시21분에 도착한 D씨(56)였다.
주민센터의 ‘마스크 마감’ 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최근 지역 맘카페에 주민센터에서 마스크를 받았다는 후기가 빈번하게 올라오면서다. 지난달에는 오후 6시 주민센터 업무시간이 끝나도 남아있던 마스크가 지난 2일에는 오후 2시, 지난 1일에는 오후 12시에 동이 나더니 이날은 오전 11시20분쯤 모든 마스크의 배급이 끝났다.
마감이 끝나고 5분 뒤 센터에 도착한 박경욱(82) 할머니는 마스크 마감을 알리는 센터 직원을 붙잡고 “내일은 마스크가 들어오냐” “언제쯤 와야 마스크를 받을 수 있냐”며 질문을 퍼부었다. 센터 직원은 “내일이 되어봐야 알 수 있다”면서 “오늘은 주민센터가 여는 9시보다 더 일찍 줄을 섰다”고 설명했다.
검정 면 마스크를 착용한 박 할머니는 아들과 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날도 아들이 출근할 때 착용할 마스크를 받기 위해 센터를 방문했다. 박 할머니는 아들이 여전히 출퇴근 때 지하철을 이용해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며 울상을 지었다. 박 할머니는 “아무래도 내일은 주민센터 열기 전 미리 와서 기다려야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