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 롯데케미칼 폭발로 큰 불…불안한 주민들 “못살겠다”

입력 2020-03-04 15:00 수정 2020-03-04 16:09
4일 새벽 폭발화재사고가 발생한 충남 서산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앞 식당이 폭발의 여파로 내부에 큰 피해를 입었다.

4일 오전 3시쯤 충남 서산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에서 폭발 화재 사고가 발생해 수십 명이 다쳤다.

지난해 수차례의 화학사고에 이어 폭발사고까지 발생하자 주민들의 분노와 불안감은 극에 달한 모습이다.

70여통에 달하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인력 274명과 장비 66대를 동원해 진화에 나섰다.

불길을 잡기 시작한 지 10여분 만에 대응 2단계를 발령한 소방당국은 32사단 화학지원대에 지원요청을 하고, 연소확대를 저지하는 한편 부상자 이송 작업 등을 펼쳤다.

약 2시간 동안의 진화 끝에 큰 불은 오전 5시11분쯤 잡혔다. 불은 잔해물 및 잔불정리가 완료된 이후 오전 9시쯤 모두 꺼졌다.

이 불로 공장 내·외부 약 12만㎡가 탔으며 직원 8명과 주민 28명 등 36명이 다쳤다. 이중 2명은 크게 다쳐 천안의 의료기관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2시 현재 사망자는 다행히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공장 인근 주민들이 폭발에 따른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어 인명피해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조사 결과 불은 롯데케미칼 공장 내 NCC동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2555㎡ 규모의 NCC동은 수산화나트륨을 비롯해 벤젠·톨루엔 등 위험물 및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곳이다.

소방당국은 NCC동의 ‘납사분해공정’ 압축라인에 이상이 발생해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공정은 원유의 1차 정제물질인 ‘납사’를 1200도 이상의 초고온으로 열분해해 메탄·프로필렌 등의 고압가스로 생산하는 공정이다.

소방 관계자는 “금강유역환경청, 서산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등 유관기관과 함께 피해 및 환경오염 정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충남 서산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인근 공장의 철제 벽면이 폭발의 여파로 뜯어진 모습.

폭발의 여파가 매우 컸던 탓에 공장 인근 상점과 건물, 주택 등의 유리가 깨지고 내부 집기가 쏟아지는 등 각종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공장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한 식당가와 편의점 등은 폭발의 여파때문에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한 식당의 경우 테이블·신발장 등 내부 집기가 모두 바닥으로 쏟아지며 부서져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또 다른 식당은 외부 창가의 창틀프레임이 휘어지며 창문이 모두 깨지기도 했다.

정문에서 약 300여m 떨어진 원룸 건물도 창문이 모두 깨지는 피해를 입었으며,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립식 공장 역시 철로 된 외부 벽이 모두 뜯겼다.

이날 오후 12시30분까지 서산시 대산읍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대책상황실에는 물피 62건, 인명피해 38건 등 총 100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특히 수 십㎞ 떨어진 당진과 태안에서도 폭발을 느꼈다는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맹정호 서산시장은 “이번 사고로 노동자를 포함한 주민들이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고, 주변 상가와 주택이 일부 파손됐다”며 “주변 상가와 주택 유리창, 내부시설이 파손돼 정확한 피해 내역을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산시는 폭발한 물질이 에틸렌·프로필렌인 만큼 유해화학물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을 롯데케미컬 측에 요구했다.

맹 시장은 “롯데케미컬이 이번 사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피해를 입은 주민들께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해주길 바란다”며 “특히 폭발이 인근 공장 설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우려된다. 이에 대한 종합적인 안전진단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 서산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인근 독곶2리 주민의 집 내부 모습.

지난해 5월 마을 인근 공장에서 유증기 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또 다시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인근 독곶2리 주민들은 ‘더 이상은 못살겠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독곶2리 이장 김종극 씨는 “폭발소리를 듣고 밖을 보니 불이 난 것을 발견했다. 사고가 자주 나긴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폭발은 정말 처음”이라며 “업체에 즉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공장 내부 통신이 두절돼 한동안 무척 불안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떤 주민은 자다가 천장이 떨어졌다고 하더라. 나 역시 사고 내용을 몰라서 마을에 방송을 할 때 ‘집 안에서 대기하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화학약품 유출 때와 달리 집 유리가 깨지거나 천장이 내려 앉는 등 눈에 보이는 피해가 실제로 일어나자 주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독곶2리 주민 김종상(72) 씨는 “나는 거실에서 자는데 폭발 여파로 문이 창틀에서 떨어져 맞을 뻔 했다”며 “업체가 방송을 너무 늦게 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부인 김춘란(68·여) 씨도 “예전에 유증기가 유출됐을 때는 직접 보이지 않아서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은 너무 가슴이 뛰고 진정이 되지 않는다”며 “놀라서 밖으로 나가다 깨진 유리를 밟아 발에서 피가 났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무엇보다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제대로 된 대응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종극 이장은 “다양한 사고가 발생하다 보니 사고 관련 매뉴얼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사고 관련 콘트롤 타워도, 지시하는 이도 없었다.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매뉴얼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산=글·사진 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