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없던 “나는” 1인칭 표현… 김여정, 담화문 직접 썼나

입력 2020-03-04 13:19 수정 2020-03-04 13:29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지난 3일 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문을 직접 쓴 것으로 관측된다. 문체나 표현에서 기존 북한 당국이 발표해온 담화문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담화문에는 “나는”이라는 1인칭 표현도 등장한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문에서 “청와대의 비논리적이고 저능한 사고에 ‘강한 유감’을 표명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라고 밝혔다. 지난 2일 청와대가 최근 북한의 합동타격훈련에 강한 우려를 표명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면서 김 제1부부장은 담화문에서 “정말 유감스럽고 실망스럽지만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이 아닌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등 자극적이고 수위가 높은 표현을 통해 우리 측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이어왔다. 이번 담화문에서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이 아닌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 것’과 같은 표현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날 선 비난을 자제한 것은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관계를 가져온 김 제1부부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또 담화문에서 “몰래몰래 끌어다놓는 첨단전투기들이 어느 때든 우리를 치자는데 목적이 있겠지 그것들로 농약이나 뿌리자고 끌어들여왔겠는가” “참으로 미안한 비유이지만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 딱 누구처럼…”과 같은 문장은 표현에서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몰래몰래’ 같은 표현은 거센 용어가 대다수인 북한의 담화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 ‘딱 누구처럼…’ 같은 시적 표현도 기존 담화문에선 흔치 않은 것이다.

또 담화문에서 “나는 남측도 합동군사연습을 꽤 즐기는 편으로 알고 있다” 같은 문장에서는 ‘나’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1인칭 주어를 사용, 김 제1부부장 자신을 드러내며 강조한 것이다.

이 같은 문체와 표현상의 두드러진 특징은 김 제1부부장이 담화문을 직접 집필했거나, 상당히 깊숙하게 집필에 관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 제1부부장이 본인 명의로 담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인 명의 첫 담화문인만큼 김 제1부부장이 더 세밀하게 들여다봤을 것으로 보인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전반적으로 문체나 표현이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며 “북한도 스피치라이터가 있지만 담화문을 내는 주체가 많이 고치기도 한다.

김 제1부부장이 직접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이 아닌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 것’과 같은 표현들은 북한이 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