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타인 명의의 유심칩을 자신이 소지한 휴대전화에 끼운 뒤 사용한 경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상습사기범이 수사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인의 유심칩을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휴대전화에 끼워 쓴 사건에서 단말장치를 부정 이용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김모씨에 대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1~3월 “성시경 콘서트 입장권을 판매한다”는 글을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린 뒤 허위로 작성된 입장권을 주는 수법으로 74회에 걸쳐 2300여만원을 챙긴 혐의(상습사기) 등으로 기소됐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타인 명의로 개설된 휴대전화 유심칩을 구해 자신의 휴대전화에 끼워 사용한 혐의(전기통신사업법 위반)도 받았다.
쟁점이 된 것은 김씨가 사용한 휴대전화 유심칩을 단말장치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자금을 제공하는 조건 아래 다른 사람 명의로 ‘이동통신단말장치’(단말장치)를 개통해 이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데, 유심칩을 단말장치로 볼 수 없다고 하면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1심은 김씨의 상습사기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 등을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유심칩은 전기통신사업법에 규정된 ‘단말장치’로 볼 수 없다”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전기통신사업법 등에 단말장치의 의미가 명시돼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말장치의 사전적 의미는 ‘컴퓨터와 통신망으로 연결된 데이터 입출력 장치’”라며 “유심칩은 그 자체로 데이터 입출력 기능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2심은 유심칩의 교환을 통한 통신서비스 이동은 2014년 7월부터 가능하게 됐는데, 불과 그로부터 3개월 뒤 생긴 단말장치 부정이용 처벌조항에 유심칩 이용행위를 규율대상으로 포함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휴대전화를 쓰기 위해선 유심칩 사용이 필수적인 점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유심만 먼저 개통하거나, 이미 개통된 유심을 공기계에 삽입하고 활성화하는 방법도 가능하다”며 “단말장치 부정이용 처벌조항이 말하는 단말장치의 개통은 유심의 개통을 당연히 포함하거나 전제로 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2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