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홍콩에 확산되는 것이 홍콩 자치정부 측에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지난해 반중국 민주화 시위로 들끓었던 홍콩 정국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람 장관은 3일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 4대의 전세기를 보내 홍콩인 533명을 데려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홍콩인 귀국 계획보다 더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문제의 보도에 대한 람 장관의 반응이었다. 앞서 반중국 성향의 빈과일보는 람 장관이 중국 중앙정부에 “코로나19 확산이 홍콩 정부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가 반정부 집회를 억제하면서 오는 9월 입법회 선거 전에는 표심이 친중국 성향의 현 정부로 기울 것이라는 취지다.
해당 보고서의 진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람 장관은 “우리는 내부 소통 문제에 관한 어떠한 추측에도 답하지 않는다”며 확답을 피했다. 그간 홍콩 정부에 대한 근거없는 소문에 대해서는 단호히 부인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람 장관으로서는 이례적인 반응이다. 람 장관이 사실상 보고서의 실체를 인정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홍콩 정부가 최근 코로나19 창궐 사태로 반정부시위가 잠잠해진 틈을 타 범민주 진영에 대한 반격을 본격화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역풍이 예상된다. 실제 범민주 진영은 “람 장관이 시민들의 건강보다 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했다”며 맹비난하고 있다.
홍콩 경찰은 지난달 28일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와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융섬 전 주석, 노동단체 홍콩직공회연맹의 리척얀 주석 등 3명을 불법 집회 참가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6개월 전 사안을 이유로 돌연 민주파 저명 인사들을 검거하면서 범민주 진영의 분노를 촉발했다. 시위 진압 현장에 투입되는 기동부대를 현 1500명에서 3000명으로 대폭 늘릴 것이라는 당국의 계획도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