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왜 시리아에서 민간인을 공습했나

입력 2020-03-03 17:53 수정 2020-03-03 19:53
시리아의 피란 행렬.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민간인들을 상대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의 유엔 보고서가 나왔다. 러시아가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시리아에 두 차례 공습을 가해 수십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2일(현지시간) 유엔 시리아 인권상황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인용해 러시아의 만행을 고발했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도와 반군을 토벌하고 있는 러시아가 군사 시설이 아닌 의료 시설 같은 민간 시설을 공격해 70만명의 민간인을 그들의 고향에서 내쫓아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러시아 비행기가 민간인 지역 폭격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로 두 가지 공습 사건에 주목했다. 첫 번째는 지난해 7월 22일 시리아 북서부의 인구 밀집 지역인 마아랏 알누만의 한 시장을 목표물로 벌어진 일련의 공습 공격으로 어린이 4명을 포함해 민간인 43명이 숨졌다. 두 번째는 시리아 반군 거점인 이들립 남쪽 하스 난민수용소에 대한 공습으로 여성 8명과 어린이 6명을 포함해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의 시리아 민간인 공격 가능성을 지속해서 제기해온 조사위원회가 실제 공습 증거를 찾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는 “목격자들의 증언, 영상 흔적, 가로챈 러시아 비행기의 통신 내용 등 믿을 만한 증거를 가지고 판단한 내용”이라며 “러시아 공군은 특정한 군사 목표물이 아닌 민간인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전했다.

러시아가 시리아 민간인을 목표물로 공습을 하는 이유는 대규모 난민 발생을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으로 살 곳을 잃은 난민들이 터키를 거쳐 유럽 사회로 대량 유입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이 난민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하고, 개별국 내부적으로도 정치적 혼란을 겪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노림수다. 푸틴을 정점으로 한 러시아 집권층은 경제침체가 길어지고 자신들의 과두 독재체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그 책임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는 전략을 폈다.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가상의 적으로 설정됐고 이 같은 기조 하에 끊임없이 서구의 분열을 꾀하고 있다.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을 돕고 터키가 반군을 지원하면서 시리아 내전이 격화됐고 지난해 12월 이후에만 피란민이 100만명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전쟁으로 살 곳을 잃은 난민들은 대부분 이웃나라인 터키로 향한다. 이미 360만명의 중동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터키 정부는 더 이상 자국이 홀로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EU 국가들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터키가 지난달 28일 자국에 들어온 중동 난민들이 그리스와 불가리아 등 주변 EU 회원국으로 향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이틀 만인 지난 1일 터키와 그리스 국경지대에는 유럽으로 향하고자 하는 1만 여명의 이주자들이 쏟아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