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없어 다시 가요” 코로나 여파 제주 떠나는 불법체류자들

입력 2020-03-03 17:18 수정 2020-03-03 17:37
3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 건물 밖으로 자진출국신고서를 접수하려는 미등록 외국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자진 출국 신청자 수는 지난 24일 이후 70~80명으로 지난해 하루 평균 20~30명 선을 2~3배 가량 상회하고 있다. 3월 들어서는 하루 200~300명까지 늘었다. 문정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때아닌 불법 체류자들의 출국 행렬을 빚어내고 있다. 일감이 없어 국내 체류비용이 부담이 되는 데다, 정부가 방역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자진 출국신고 창구를 열면서다. 여기에 전면 중단됐던 제주공항 중국노선 운항이 재개됐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는 자진 출국신고서를 접수하려는 외국인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3일 제주시 용담동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주변에는 이른 새벽부터 마스크를 쓴 중국인들이 건물을 에워싸듯 행렬을 이뤘다. 무사증을 이용해 제주로 들어온 뒤 30일 후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주에 남아 돈은 벌던 불법 체류자들이다. 이들 대부분이 코로나19로 지역 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많은 불법 체류자들은 “일감이 없어 떠난다”고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일은 없지만, 급여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에 체류하는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식당과 건설현장, 양식장, 농장 등에서 일했다고 했다.

11살 아들과 함께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중국 지린성 출신의 장모(35)씨는 “5년 전 제주로 왔다. 춘절 전에 아들을 제주로 불러 같이 지냈는데, 감염병(코로나19)이 퍼지는 상황이 장기화될 것 같고, 일감도 계속 없을 것 같아 함께 중국으로 들어가려 한다”고 했다. 그는 새벽 4시에 이곳에 도착했다.

장씨보다 먼저 온 이들도 있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어제부터 급격히 몰린다. 오늘은 오전 8시20분 출근해보니 이미 줄이 출입문 밖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새벽 2시에 왔다는 사람도 봤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곳곳에서 자진 출국신고서를 작성하는 모습과 오전에 받은 접수표를 들고 길게 줄을 선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이었다.

이처럼 불법 체류자들이 제주를 떠나는 것은 일자리를 잃어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제주 체류비가 부담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법무부가 코로나19의 방역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오는 6월까지 불법체류자들의 자진 출국 신고를 받는 것도 이들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법무부는 자진 신고기간 출국자에 대해 범칙금과 입국 금지를 면제하고, 자진 출국확인서를 발급해 재입국을 사실상 보장하고 있다. 불법 체류자들에게는 일자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한국을 떠날 호기를 만난 셈이다.

특히 코로나가 국내에 빠르게 확산하면서 지난 23일 정부가 위기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하고, 코로나 여파로 지난달 17일 전면 중단됐던 제주공항 중국노선 운항이 지난 27일 일부 항공사에 의해 재개되면서 그동안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갔던 이들의 출국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자진 출국 신청자는 지난 24일 이후 하루 평균 70여명꼴로, 지난해 하루평균 20~30명을 2~3배가량 웃돌고 있다”며 “특히 이번 주 들어 하루 200~300명 가량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제주지역 불법 체류 외국인은 2013년 1285명에서 2017년 9846명으로 증가한 데 이어 2018년에는 사상 처음 1만명을 넘어섰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